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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국의 디스] 중고차업계 무서워 소비자 제물로 바칠 건가


입력 2021.04.19 13:24 수정 2021.04.20 06:02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 2년째 결론 못 내려

총선·재보선·대선 감안한 정치적 이해득실 고려 의혹

중고차 사기 현장을 잠입 취재하는 방송사 PD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중고차 딜러. KBS더라이브 영상 캡처

최근 한 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방송국 PD가 중고차 사기 현장을 잠입 취재한 영상이 공개됐다. 별도의 제보도 없이 인터넷으로 시세보다 낮게 올라온 매물을 검색해 중고차 딜러를 찾아간 것이다.


딜러는 추가 비용이 없다고 안심시켜놓고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선납금을 입금하자 이내 안색을 바꿔 ‘잔존가치’라느니 ‘미회수 원금’이라느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용어를 거론하며 당초 제시한 금액의 6배에 달하는 비용을 추가로 요구했다. 추가 비용이 없다고 하지 않았냐고 하니 “지금 장난하러 오신 거 아니죠?”라며 고압적인 태도로 협박했다.


사실 이 사건이 매우 새롭거나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오랜 기간 중고차를 구매하러 간 소비자들이 흔히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일이다. 영상 속 딜러의 고압적인 말투 역시 그리 놀랍지 않다. 경찰에 적발된 중고차 소비자 피해 사례를 찾아보면 더 심한 폭언과 위협, 심지어 감금 사례까지 등장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는 매년 1만건 이상의 중개·매매 관련 불만 상담이 접수된다.


국내 소비자들에게 중고차 시장의 이미지는 사기와 협박이 난무하는 무법지대로 각인돼 있다. 한길리서치가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의뢰로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9.9%가 중고차 시장을 ‘혼탁·낙후된 시장으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을 이런 부당한 행위로부터 보호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중고차 딜러들이 계속 횡포를 부릴 수 있도록 보호(?)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고차 시장이 혼탁해진 것은 사업자등록증도, 자격증도 없는 딜러들이 난무한 데 따른 것이다. 언제든 사기를 치고 사라질 수 있는 이들에게 당했으니 소비자들은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대다수가 소규모 영세 사업자인 중고차 업계에서는 이들을 단속할 방법이 없다. 시장 자정 능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자 단체들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참여를 통한 선진 시스템 도입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이 전적으로 소비자를 위해 시장에 참여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중고차 가격으로 장난을 치다 기업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위험을 감수할 만한 바보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는 오랜 기간 중고차 시장에 대기업 진입을 막으면서 이런 상황을 방치했다. 중고차 시장은 지난 2013년부터 6년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불가능했다.


2019년 초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일몰됐지만 이를 대체하는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된 상태다. 중고차 업종이 이에 포함될 경우 소비자들은 계속해서 사기 피해의 제물이 돼야 하지만,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2년째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산업경쟁력과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해 중고차 업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부적합하다는 동반성장위원회의 의견이 제출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정부 입장에선 중고차 시장의 대기업 진입 허용 문제가 ‘뜨거운 감자’일 수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다수지만 중고차 업계와 그에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은 결사반대한다. 워낙 규모가 큰 사안이라 정치적인 파급력도 무시할 수 없다.


숫자는 소비자들이 많지만 정치적 적극성은 생업이 달린 중고차 업계가 더 높다. 어느 쪽이건 만만치 않은 표밭이다.


공교롭게도 중소기업 적합업종 일몰 이후 계속해서 정치적 이벤트가 이어졌다. 지난해엔 총선이 있었고, 올해는 재보선이 있었다. 정부가 어떤 식으로건 결론을 내린다면 ‘다수의 소극적 찬성파’건 ‘소수의 적극적 반대파’건 한 쪽은 반대편에 설 여지가 있었다.


아직도 남은 정치적 이벤트가 있다. 내년이면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대선이 치러진다.


이 때문에 업계와 소비자 단체에서는 중소기업벤처부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끌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물론 기우(杞憂)이길 바란다.


정부가 그동안 소비자 보호와 영세 사업자들의 생존을 양립시킬 해법을 고심했다면 하루 빨리 내놓아야 한다. 2년이면 차고도 넘치는 시간이다. 그 사이에도 수많은 소비자들이 사기 딜러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돈을 뜯겼다.


더 시간을 끌다가는 정치적 이해득실 때문에 버틴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특정 업종의 생계를 유지해주겠다는 미명 하에 소비자들을 제물로 바치는 정권을 지지해줄 국민은 없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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