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싱가포르 계승' 위해 '총력전'
문재인 "트럼프 성과 위에서 진전 이뤄야"
정의용 "토대 마련해 다음 정부에 인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 의지를 피력해온 문재인 정부가 대북 '성과'보다 '상황관리'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워 남북미 관계의 선순환을 강조했던 임기 초와 달리 '시간적 제약'을 염두에 두고 바이든 행정부 설득에 총력전을 펴는 양상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북한) 비핵화가 실패했다고 보지 않는다"며 "그간 추진해온 외교정책을 잘 마무리해 다음 정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저의 소임"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협상을 위한 틀을 만들어 놨다"며 "그런 토대를 완전히 마련하고, 다음 정부가 인계받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이 언급한 '협상 틀'은 싱가포르 선언을, '차기 정부를 위한 완전한 토대 마련'은 바이든 행정부의 싱가포르 선언 계승을 뜻한다. 트럼프 행정부와 김정은 정권이 문 정부 중재로 싱가포르 선언을 도출한 만큼,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계승할 경우 평화프로세스 역시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거둔 성과의 토대 위에서 (북미협상을) 더욱 진전 시켜 나간다면 그 결실을 바이든 행정부가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해당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 장관은 "싱가포르 합의에 한반도(북한) 비핵화 기본 원칙이 담겨 있고, 기본 원칙을 통해 관여하면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며 "미국이 북한에 관여하는 데 있어 출발점은 굉장히 좋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도 최근 우리 주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일단 보여진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최근 "싱가포르 합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밝힌 데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장관은 북한 비핵화 논의가 북미 양자협상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북핵문제 해결과 다자주의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본다"며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받아야만 핵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이 워낙 강하다. 미국도 그런 북측 의사를 잘 알고 있어서 북미 양국 간 협상을 재개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선언이 북미 양자적 접근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이 싱가포르 선언을 계승하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협상이 빠르게 재개되길 희망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한미일 공조는 물론, 중국·러시아의 역할까지 강조하며 다자주의적 접근을 시사하고 있어 향후 북한 비핵화 협상이 문 정부 의도대로 전개될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특히 미국과 거의 모든 이슈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일본이 납북자 문제 해결 등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바이든 행정부 대북정책이 문 정부 기대를 벗어나는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이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대중정책 하위 개념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를 고려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정책은 압도적으로 중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미중 대결이라는 큰 구도에서 미국에 호감을 줄 입장이 있어야 작은 구도인 북핵문제나 남북관계에 대해 미국을 설득할 공간이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