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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초점] 할매니얼·할밍아웃...‘할매’에 빠진 MZ세대


입력 2021.05.19 15:05 수정 2021.05.19 15:1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옛 것 되살린 식품·의류·광고계 등...매출 급상승

윤여정·밀라논나·나빌레라 등 미디어 속 시니어 열풍 거세

ⓒ지그재그 ⓒ지그재그

1980~2000년대 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할머니.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났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할매니얼’이라는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로, SNS에 검색하면 다수의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할머니와 커밍아웃의 합성어 ‘할밍아웃’이란 말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할머니 감성이 젊은 세대들에게 스며든 것이다. 할머니들이 입을 법한 꽃무늬 니트가 인기를 끌고, 흑임자·인절미·오미자차 등 소위 ‘어른 입맛’에 맞을 법한 전통적인 먹거리들이 젊은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또 옛 정취가 남아있는 익선동·을지로 골목, 과거 사용되던 소품들이 젊은이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할매니얼 열풍을 더 거세게 만든 건 미디어의 역할이 주효했다. 최근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을 두고 요즘 세대들은 “윤여정처럼 우아하게 늙고 싶다”고 말하고, 윤여정의 어록이 도는 것은 물론, 그의 매력에 스며든다는 의미로 ‘윤며들다’는 말까지 나온다. 방송을 통해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여유와 입담, 그리고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와 세련된 패션센스 등 여러 요소들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작용한 결과다. 또 JTBC는 ‘와썹 K-할매’, tvN ‘나빌레라’, 유튜브 ‘밀라논나’ 등 시니어 세대들이 미디어의 주체로 떠오르면서 할머니 감성은 2030 세대들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이 같은 트렌트는 수치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2021년 한정 메뉴로 선보인 오트(현미·보리·흑미·백태·검정콩 등 통곡물) 음료를 구매하는 소비자 중 2030 세대 비중이 70%였다. 인절미·흑임자와 같은 전통재료를 활용해 만든 제품으로 오리온은 스낵 카테고리 매출이 올 1분기 7.6% 늘었고, 한국 법인 실적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2%와 17.7% 오를 정도로 호실적을 기록했다.


패션계도 할매니얼 열풍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10, 20대 소비자가 일명 ‘할미룩’을 찾으면서 이들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편집숍이나 SAP 브랜드에서 매출 상승 현상이 도드러진다.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올해 1~3월 꽃무늬 롱스커트가 판매량 1위를 차지했고 작년 동기 대비 약 270% 증가했다. 카디건 판매량도 무려 164%나 상승했다.


2030 세대의 소비 트렌드가 변하면서 광고업계는 시니어 모델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윤여정은 20대들이 즐겨 찾는 쇼핑몰 ‘지그재그’의 모델로 등장한 것에 이어 오비맥주, KB금융, DIGICO KT 등 다양한 CF에 출연했다. 윤여정은 물론 2030 여배우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화장품 광고에서도 80대 강부자가 메인 모델 자리를 꿰찼다. MZ세대들에게 간편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햇반컵반도 모델로 80세 나문희를 내세웠다.


소위 ‘꼰대’로 불리던 시니어 세대들이 2030세대의 일상에 스며들게 된 건,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다. 이 같은 현상은 몇 년 전부터 유행했던 뉴트로 열풍의 연장선으로도 읽힌다. 관계자들은 디지털 첨단 문명의 세례가 강력할수록 피로감도 덩달아 높아졌고, 자신의 개성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 것으로 본다. 또 ‘불황엔 복고가 뜬다’는 말을 이번 할매니얼 열풍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 만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늘 새로운 것을 찾는데 그 대상이 옛것이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팍팍한 현실에 몸과 마음이 지친 밀레니얼이 마음의 안정을 구하기 위해 옛것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은 심리가 강해졌고, 따뜻함·포근함·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할머니 감성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해외에선 몇 년 전부터 ‘그래니 시크’(granny chic·세련된 할머니) 또는 ‘그랜드밀레니얼’(grandmillennial)이란 용어가 쓰이면서 패션·음식·인테리어 등의 영역에서 옛날 하머니 스타이을 세련되게 재해석하는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에서 부는 ‘할매니얼’ 열풍도 이와 흡사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 윗 세대를 ‘꼰대’라고 표현하는 기조가 강했다. 지금의 시니어층에 대한 호감은 꼰대문화의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다. 최근 드라마 ‘나빌레라’에서는 멘토가 사라진 현 시대에 의지할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꼰대가 아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을 찾고 싶어 하는 MZ세대들이 시니어를 무대에 올리고, 그들의 전유물로 존재했던 물건이나 패션 등을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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