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고소 접수 거부 당한 고소인 상담 사례 급증…고소인 동의만 하면 고소장 거부 가능
법조계 "경찰이 트집 잡아 접수 거부 동의 요구하면, 법률 지식 없는 대다수 고소인 반발 힘들어"
"불송치 결정문 작성 부담 느껴 관행 생겨…수긍 기준 세워져야, 수사착수 후 각하 결정 법제화 시급"
경찰 "고소·고발 남용 방지와 무고한 시민 입건 막기 위해서라도 고소장 접수 신중해야"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고소인이 경찰서에서 고소장을 반려당한 사례가 빈발하면서, 반려 처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변호사들은 경찰서에서 고소 접수를 거부당한 고소인들의 상담 사례가 잦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이 더 자세한 범죄사실 기재 및 추가 증거 자료를 요구하며 고소인을 돌려보낸다는 것이다.
애초 경찰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고소장을 접수해야 했지만 지난 1월 범죄수사규칙이 개정되면서 고소인의 동의를 구하기만 하면 고소장 접수를 거부할 수 있게 됐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경찰이 고소장 내용을 트집잡으며 접수 거부 동의를 요구하면 법률 지식이 없는 대다수의 고소인으로서는 반발하기 어렵다"며 "고소장 반려를 경찰 재량에 맡기는 성격의 규정이 생긴 만큼 반려 관행이 하루 아침에 고쳐지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의 이승기 변호사는 "일반인에게 법조인 수준의 고소장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최근엔 변호사 명의의 고소장마저 반려당한 사례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수사인력 충원, 합리적인 반려 기준 명문화 시급
이처럼 고소장 '묻지마 반려'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경찰이 불송치 결정문을 작성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부터 경찰은 수사종결권을 갖게 되면서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불송치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이 경우에는 불송치 결정문을 작성해 어떤 사유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는지 검찰을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불송치 결정문이 사건 내용은 물론, 법률적인 관점도 정리해야 하는 만큼 작성 난이도가 매우 높아 경찰들이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만성적인 수사인력 부족도 '묻지마 반려'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가뜩이나 수사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수사 범위까지 늘어나면서 행정편의주의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사인력 충원 및 수사의 질 개선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법조계에서는 고소인이 반려 처분에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져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고소장 접수 거부에 대한 판단을 일선 경찰서에 맡긴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처사"라며 "고소인도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거부 기준이 명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사평론가인 이상휘 세명대 교수는 "고소장 내용이 수사 개시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돼선 안 된다"며 "일단 수사에 착수한 뒤 각하 여부를 가리도록 하는 규정이 국회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부실한 고소장 토대 수사는 무고한 시민 입건 부작용"
이처럼 고소장 '묻지마 반려' 비판 여론에 대해 경찰 관계자들은 형사 처벌이 어려운 민사 사안이나 범죄 구성 요건에 부적합한 경우에만 고소장을 반려하고 있고, 고소·고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고소장 접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업무과중 때문에 고소장을 반려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현재 일선서에 수사 상담 민원센터를 설치해 고소인에게 범죄가 성립되는지, 처벌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상담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소인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들의 권리구제와 피해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부실한 고소장을 토대로 수사했다가는 무고한 시민을 입건해 정신적인 피해를 안길 수 있고, 없는 인력에 수사력까지 낭비하게 된다"며 “여러 상황이 있어 경찰도 고소장 접수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