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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경쟁 주자를 도우는 사람은 레밍인가?


입력 2021.08.09 09:01 수정 2021.08.09 07:22        데스크 (desk@dailian.co.kr)

시샘에서 나온 악담으로 들릴 수도

주자와 지지자는 주종관계 아니다

위태한 유력 주자와 당 지도부 관계

ⓒ데일리안 DB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주자 간의 날카로운 대립, 주자들과 당 지도부 사이의 불협화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더니 그 양상이 국민의힘으로 옮겨지는 분위기다. 불가피한 현상이긴 하지만 대선 참여자들, 그러니까 주자, 캠프 관계자, 당 지도부, 지지세력이 자제력의 고삐를 놓치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상황으로 빠져들고 만다.


시샘에서 나온 악담으로 들릴 수도


이 당의 홍준표 의원이 7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당 소속 의원 등을 ‘레밍’에 비유하며 비판했다. 레밍(Lemming)은 나그네쥐로도 불리는데 몇 년마다 개체 수가 급증하기 때문에 무리지어 대이동을 하는 습성을 가졌다. 우두머리를 따라 직진으로만 이동하는데 바다를 만나면 집단자살의 상황을 연출한다고 알려졌다.


이 쥐가 우리에게는 존 위컴 전 주한미군 사령관의 언급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1980년 8월 ‘LA타임즈’의 샘 제임스, ‘AP통신’의 테리 앤더슨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레밍을 예로 들었다. 전두환이 한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레밍 떼처럼 그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고 위컴은 지적했다(나무위키). 국내 언론이 거두절미, “위컴이 한국인을 레밍에 비유했다”고 보도한 바람에 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었다.


홍 의원의 비유 목록에, 당연히 ‘레밍정치’도 들어 있다. 그는 재작년 1월 페이스북에, “황교안 레밍 신드롬으로 모처럼 한국당이 활기를 되찾아 반갑습니다”고 썼다. 당 대표를 지낸 자신은 당 밖에 내쳐져 있는데 황 전 총리가 하루아침에 당을 장악하는 형세를 보이니까 마음이 몹시 상했던 듯하다.


그가 이번엔 윤 전 총장 측 비난용으로 다시 레밍을 불러냈다. 지난 6월, 홍 의원은 “아무리 염량세태라지만 국회의원이 레밍처럼 무리를 지어 쫓아다니는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윤 전 총장 지지 의원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지난 7일엔 다시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요즘 매일 실언을 연발하며 어쭙잖은 줄 세우기에만 열중하는 훈련 되지 않은 돌고래를 본다. 그 돌고래를 따라 무리 지어 레밍처럼 절벽을 향해 달리는 군상들도 본다. 참 딱하고 가엽다.”


주자와 지지자는 주종관계 아니다


같은 당 정진석 의원이 윤 전 총장을 돌고래에, 지지율 낮은 군소 주자들을 멸치에 비유한 데 대한 갚음인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재치 있는 응수라고 하겠는데 대선주자쯤 되는 인사가 비아냥거리기 식 말재주에 능하다는 건 장점이라고 하기 어렵다.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동료 의원들을 레밍으로 싸잡아 조롱하는 건 자칫 시샘에서 나오는 악담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긴 홍 의원만이 그러는 것은 아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 김태호 의원 등도 ‘줄 세우기’ ‘편 가르기’ 등의 용어로 윤 전 총장 측을 성토하고 나섰다. 이들이 경계심을 드러내는 것은 당내 의원들이 속속 윤 전 총장이나 최재형 전 감사원장 캠프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외부인이 어느 날 불쑥 들어와 강력한 구심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상에 거부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이라 할 수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비난은 너무 궁색해 보인다.


경선이 끝나 당 공천 후보가 정해질 때까지 소속 의원들은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뜻일까? 터무니없는 주장 혹은 요구라는 것은 ‘레밍 론’, ‘줄 세우기 론’을 제기하는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더욱이 이들에게도 (추종하는 것인지, 줄을 서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음으로 양으로 힘을 보태는 의원들이 있다. 설마 “내게 오는 것은 당연한 정치적 선택이지만 외래 인사들 쪽으로 가는 것은 레밍적 행태”라는 말이기야 하겠는가. 그렇게 이해한다 해도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참에 큰 오해 하나는 풀고 가야 할 것 같아 상식을 굳이 강조하려 한다. 주자와 지지자들은 주종관계에 있는 게 아니다. 지지자들이 주자를 올려 세워 후보로 만들고 당선자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바로 경선이다. 우리의 정치의식이 갈수록 왕조시대로 퇴행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대통령이 버젓이 제왕 행세를 하고 공직자들은 총신이 되고자 안달한다. 주권자인 국민조차도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해”라며 권위와 권리를 헌납하고 만다. 물론 좌파 진영의 논리·질서이지만 우파 쪽도 어느새 그런 사고구조를 닮아가고 있다. 이런 의식부터 깨뜨리시라.


위태한 유력 주자와 당 지도부 관계


유력 주자들과 당 지도부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난기류도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윤 전 검찰총장의 경우다. 현실 정치에서 이런 갈등을 피하긴 어렵다. 그러나 상호 경쟁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서로의 역할과 처지가 확연히 다른 만큼 경쟁관계가 성립될 여지도 전혀 없다.


당 지도부는 주자들의 단합, 질서 있는 경쟁, 원활한 경선 관리, 당 이미지 쇄신, 당 차원의 역량강화 등 많은 책무를 진다. 이 점에서 당 소속 주자들은 당연히 지도부에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대선 정국에 들어선 이상 당 지도부는 스스로를 제2선에 두는 게 옳다. 주자들을 앞세우고 그들이 멋있는 경선을 통해 당 후보 1인을 산출해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몇몇 주자들의 용산구 쪽방촌 봉사활동 및 대선주자 회의 불참을 두고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당 지도부 쪽에서 불쾌해 하는 소리가 이어지고 같은 주자들 가운데서도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데 이건 불참자가 아니라 당 지도부가 만든 문제다. 충분한 논의가 없이, 일방 통보 식으로 행사 참석을 요구했다면 지도부의 월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분 1초가 아쉬운 주자들의 형편부터 배려해주는 게 바로 당 지도부의 바람직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당 대표, 원내대표에다 경선준비위원장까지 나서서 주자들의 행보에 말을 보태기 시작하면 전열은 흐트러지고 행군은 더디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때일수록 고위 당직자들은 주자들에 대한 주문(注文)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주자들과 당직자들이 서로 위세 자랑을 하며 맞부딪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본 선거에 이르기도 전에 패배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우를 범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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