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러진 MBC 예능대상에서 기안84가 대상을 받았다. 연예대상 최초의 비연예인 대상이라고 한다. 일반인이 예능 출연으로 일약 인생역전을 하면서 예능계 판도까지 뒤집은 형국이다.
비연예인 기안84가 예능에 자리 잡은 배경은 리얼리티 트렌드다. 원래 예능은 예능인들이 주도하는 웃음판이었는데, 2010년대 이후부터 일반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가수나 배우 같은, 비록 연예인이긴 하지만 예능과는 거리가 먼 비예능인들의 영역이 넓어지더니 아예 비연예인들까지 등장했다.
의사, 요리사, 운동선수, 요식 사업가 등이 전면에 나선 것이다. 그런 흐름 속에서 웹툰 작가들도 주목 받았는데 그 안에 기안84가 있었다. 과거 고우영이나 박광수 같은 만화가들도 예능에 나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만화가라는 직업과 연관된 출연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즉석 만화 한 컷을 그리는 식이었다. 반면에 리얼리티 시대의 기안84는 연예인들과 나란히 프로그램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2016년에 MBC ‘나 혼자 산다’로 예능 출연이 시작됐는데, 그의 가식 없는 모습이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다른 출연자들은 방송에서 어느 정도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반해 기안84는 자취하는 일반인의 생활상을 날것으로 공개해 사랑 받았다.
하지만 ‘방송용’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 종종 시청자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시상식에 일반 패딩 점퍼를 입고 나타나 무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고, 평소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할 때도 뭔가 답답하거나 불안한 모습에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방송용 캐릭터가 아닌 기안84라는 사람의 본 모습이었고 그 진정성을 사람들이 점점 인정하며 받아들이게 됐다. 그러다 2022년 12월부터 시작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에서 기안84 신드롬이 터지기에 이르렀다.
이 프로그램은 리얼 중에서도 더욱 강한 리얼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른바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극사실주의 여행 예능’으로 여행자들이 기안84를 비롯해 빠니보틀, 덱스 같은 비연예인이다. 그런 비연예인들이 여행하는 영상을 스튜디오에서 연예인들이 지켜보며 토크를 나눈다.
플랫폼 격변기를 맞아 위기에 빠진 지상파 방송사가 유튜브 여행 영상 포맷을 받아들인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비연예인들이 그동안 많이 소개되지 않았던 오지를 여행하는 모습을 극히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콘셉트다. 이런 포맷에서 기안84의 가식 없는 진정성이 폭발했다.
그는 현지에 그대로 동화되며, 지금까지 연예인 여행 예능에서 볼 수 없었던 진귀한 모습들을 보여줬다. 만약 연예인이 그런 모습을 카메라 앞에서 보였다면 방송용 연출이라고들 했겠지만, 기안84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느꼈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일약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결과 이번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방송 위기의 시대다. MBC에서도 연예인들이 나오는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적이 시원치 않다. 그럴 때 비연예인이 이끄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가 신드롬을 일으키자 일찌감치 기안84가 대상감으로 거론됐었다. 그리고 이번 시상식에서 그것이 실현된 것이다.
기안84는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신의 생활상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며 리얼리티 시대의 총아가 됐다. 그 생활상이 자취하는 남성의 일반적인 모습이면서 동시에 어떤 기인 같은 특이한 면까지 있어서 시청자에게 신선한 느낌과 재미까지 안겨줬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기본적으로 따뜻해서 그의 사람됨 자체가 시청자에게 호감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기안84가 비연예인으로서 예능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그는 한때의 특이한 돌출 요소로 인기를 끈 것이 아니고 가식 없는 솔직한 태도와 인간미 자체가 시청자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간 것이어서 앞으로도 당분간은 리얼리티 속 활약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