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시장, 전선 지중화 거의 안 돼 있고 실타래처럼 얽혀있어 누전 위험 높아
중부건어물시장, 소방도로 주차 및 소방시설 옆에 물건 적재…문어발식 전기 연결
시설현대화 개선 마친 용문시장 "반발 있었지만 상인은 물론 시장 찾는 손님들의 만족도도 높아"
한국소방시설협회 "전통시장 일자형태 좁은 골목구조, 화재 취약…화재감지기·소화기 설치해야"
1월은 연중 화재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달이다. 특히 전통시장에서의 화재가 빈번한데 강추위로 인해 난방기구 사용이 늘어나는데다가 설 대목을 앞두고 상인들의 생산 및 유통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12월~2월 전통시장 화재 건수는 총 41건으로 전체 125건의 1/3을 차지했다.
15일 데일리안이 서울시내 전통시장 여러 곳을 찾아 화재 위험요소와 대비태세를 점검한 결과, 화재위험성이 높은 것은 물론, 초기 진화를 위한 대비책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곳이 상당수였다. 특히 시장 상인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있는 '안전 불감증'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전통시장 대부분 전선 지중화 안 돼…소방도로에도 '얌체 주차'
기자가 이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방산시장이다. 포장재 및 판촉인쇄물을 주로 취급하는 이 시장의 특성상 각종 비닐류와 종이류가 많이 거래되는 곳으로, 화재가 일어나면 그 피해가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전신주를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뒤엉킨 채 공중을 뒤덮고 있는 전선들이었다. 전선을 땅 속에 매립하는 추세와는 달리, 이 곳은 여전히 1980년 대처럼 전신주와 공중 전선을 통해 공급되는 전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상 전신주의 가장 큰 문제점은 두 가지다. ▲크기와 무게의 한계로 인해 변압기의 용량이 한정적이라는 것 ▲전선이 비바람과 햇볕에 노출되며 부식과 마모가 빠르게 이뤄져 누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방산시장 상인 서모(58)씨는 "변압기 용량 문제는 상인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꽤 있다"며 "여름에 공작기계를 돌리고 에어컨까지 켜면 가끔씩 정전이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는 "여름 장마철에는 전신주 누전도 거의 해마다 일어나는 편"이라며 "전선이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 수리하는 데 한나절이 걸릴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불편은 단지 불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누전으로 인한 화재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전무한 형편이었다.
또다른 상인 최모(61)씨는 "전선 지중화는 바로 아래를 지나는 지하철 2호선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완전 지중화가 안 되면 변압시설이라도 공중이 아니라 땅 위에 설치하면 좋겠는데 시장 골목이 좁아서 그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시장 중앙의 큰 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로 폭이 5미터도 되지 않아 화재시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심지어 소방도로로 지정돼 주차가 금지된 구역에도 이륜차와 자동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방산시장 상인연합회 측은 "시장관리 측에서도 소방도로 주차 문제를 알고 있고 소방도로에는 주차를 하지 말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자기 점포 앞에 주차를 하는 것까지 일일이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며 "상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제품 배달을 위해 드나들게 되는데 주차를 못하게 하면 장사를 접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소화용구함 옆에 버젓이 철재 적재대…시장 전체에 '안전불감증'
방산시장 바로 건너편에는 중부건어물시장이 있다. 명절을 앞두고 멸치와 굴비 등 수산물이 대량으로 유통되는 곳이다. 중부시장 역시 곳곳에 '안전불감증'이 현존해 화재에 대한 대비가 소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좁은 시장 골목으로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이 많아 보였고 방산시장과 마찬가지로 전신주와 공중 전선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고 있었다.
중부시장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안전보다 편리를 우선시하는 분위기였다. 화재시 소방차가 도착할 때까지 화재 확산을 막아줄 비상소화장치 5미터 이내에는 소방법에 따라 차량 주차는 물론 화물 적치도 금지된다. 하지만 중부시장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 근처에는 철재로 단단하게 고정된 화물 적재대가 놓여있었다.
또 굴비를 말리기 위해 시장 내에서는 대형 선풍기 수십대가 쉴새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이런 대형 선풍기의 경우 전력소모량이 많아 하나의 멀티탭에 여러 대를 연결하면 과열 위험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점포에서는 단 한 개의 멀티탭에 3~4대의 선풍기를 연결해 사용하고 있었다.
중부시장 상인 박모(62)씨는 "하나의 멀티탭에 선풍기 여러 대를 한꺼번에 연결해도 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겨울엔 과열 위험이 거의 없으니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하지만 이런 문어발식 전기기구 연결이 겨울철 화재의 큰 원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시장 내 대부분의 점포들 입구에 소화기가 비치된 곳이 없었다. 상인 구모(65)씨는 소화기 비치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지게차하고 구루마(손수레)가 얼마나 자주 오가는데 걸리적거리게…"라며 "소방서에서 나오셨어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시설현대화 거친 시장들은 확실히 화재위험 낮아…지자체에서 적극 지원해야
이번에는 최근 현대화 개수를 마친 용산구 용문시장으로 향했다. 용문시장은 지난해 용산구청의 지원을 받아 차량진입이 불가능했던 시장 골목을 확장하고, 소방시설을 확충하는 등 큰 개선을 이뤄낸 곳이다.
용문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 것은 약 10미터 간격으로 잘 비치돼있는 소화기였다. 빨간색 소화기는 산뜻하게 밝은 녹색으로 칠해진 기둥의 색상과 대비돼 더욱 눈에 잘 띄었다. 시설현대화 개선 작업을 마친 시장 골목 100여 미터를 걷는 동안 발견된 소화기는 약 30대로, 화재 발생시 초기 진화를 시도하기에 충분한 수량이었다.
용문시장 상인회 측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겨울이 되기 전에 사업을 마친다는 목표로 지난 여름부터 공사를 추진했다"며 "몇 달간 장사를 쉬거나 점포를 옮겨야하는 일부 상인들의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화재위험성이 심각하단 얘기에 대부분 상인들이 공감했다"고 전했다. 또 "시설현대화 사업 후에는 전선도 많이 지중화가 됐고 소화설비도 잘 갖춰져 상인들은 물론 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한국소방시설협회 관계자는 "전통시장은 기본적으로 일자형태의 좁은 골목 구조가 화재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형태"라며 "전통시장은 소화기 비치나 스프링클러 등 화재초기 대응 설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적극적인 안전 계도와 함께 전통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화재감지기 설치와 소화기 비치는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실천"이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