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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에도…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실적[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4.04.15 07:00 수정 2024.04.15 07:00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국내 배터리 3사 1분기, 세액공제 혜택 제외 적자 예상

삼성SDI, ‘도움닫기’ 없이 3사 중 유일한 흑자 전망

외부 의존 독될 수 있어…내실 다지기 주력해야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각 사 공장 전경 및 CI. ⓒ박진희 데일리안 그래픽디자이너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각 사 공장 전경 및 CI. ⓒ박진희 데일리안 그래픽디자이너

어렸을 적 집 안에는 종종 병아리 부화기가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뜻한 조명 아래 여러 개의 알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모든 알이 병아리가 되지는 못했다. 미동도 없이 알 그대로 있거나 껍데기를 깨고 나오다가도 지쳐 죽기도 했다.


어린 눈에는 알 속의 병아리가 단단한 달걀 껍데기를 깨고 나오기에는 너무 연약해 보였다. 그럴 때면 어린아이 특유의 순진함으로 대신 그 껍데기를 깨주고 싶었다. 그러면 어른들은 그런 애들은 어차피 죽는다며 돕지 못하게 했다.


이제는 안다. 달걀은 안에서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밖에서 깨면 프라이가 된다. 자력으로 벽을 깨면 탄생이지만 외력으로 깨지면 죽음이다.


최근 국내 배터리 실적을 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은 이제 막 알을 깨는 단계에 돌입했다. 하지만 국내 배터리 기업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병아리 부화기의 따뜻한 조명은커녕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정체기)이란 거센 외풍이다.


국내 배터리 3사의 올 1분기 실적은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를 제외하면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업계 1위인 LG에너지솔루션이 처음 적자를 낸 것은 더욱 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듯하다.


다른 기업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SK온도 올해 1분기까지 9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SDI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5.72% 줄어든 2413억원으로 추산된다. 그나마 AMPC 도움 없이 흑자를 냈다는 게 위안이다.


누군가는 ‘일부러 혜택을 받기 위해 투자한 것인데 왜 성적을 평가할 때는 AMPC를 빼고 셈해야 하는가. 더 유리한 경영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투자한 것도 실력이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선구안과 발 빠른 대응도 실력이다. 그래도 AMPC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어야 했다. 어디까지나 자체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외부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IRA 폐지를 외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AMPC에 의존했던 기업들의 실적 부진이 심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잠정 영업이익은 1573억원이지만 이 중 AMPC 금액(1889억원)을 빼면 영업손실 316억원으로 사실상 적자다. 아직 1분기 실적이 발표되지 않은 SK온도 지난해 AMPC의 힘을 빌려 적자 폭을 절반으로 줄여왔다.


실제 영업이익보다 AMPC가 실적을 좌지우지하니 ‘배보다 배꼽이 큰 격’이다. 이런 측면에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AMPC에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성과급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던 LG에너지솔루션은 변동성 큰 IRA에 따른 혜택은 성과지표에서 제외했다. LG에너지솔루션 스스로도 AMPC는 ‘진짜 실력’이 아니라고 인정한 셈이다.


올 1분기 AMPC 없이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SDI에게는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 심각한 대외 변수가 되지 못한다.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3사의 결과가 다른 것은 ‘의지’와 ‘의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성SDI는 미국 시장 진출에 국내 경쟁사 대비 늦게 진출하면서 완공된 공장이 없어 AMPC를 받지 못했다. AMPC를 받기 위해 서둘러 무리한 투자에 나선 대신 수익성 위주의 질적 성장을 앞세워 내실 다지기에 집중한 덕분이다. 지난해 삼성SDI는 AMPC는 받지 못했지만 타사 대비 높은 7.2%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AMPC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준다는 돈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만 그건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체력을 갖춘 상태에서 주어져야 한다. 외부 도움에 의존하다보면 결정권도 외부에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벌써부터 미국 정부가 AMPC을 무기로 외국 기업들을 휘두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데미안의 한 구절처럼 전기차-배터리 시장에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스스로 손익분기점의 벽을 깨야 한다. 수요 부진 속에서도 기술력과 양산 경쟁력만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체력을 키운다면 지금의 고난은 K-배터리가 오래도록 전기차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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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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