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충격 기자회견이 공론장을 휩쓸었다. 바로 어도어 민희진 대표 기자회견이었다. 지난 22일에 하이브가, 자회사인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경영권 탈취를 기획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감사에 돌입한다고 알려 불거진 사건이다.
보통 엔터 회사들은 문제를 조용히 봉합한다.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하이브와 어도어 모두 하이브다. 하이브 땅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 어떤 식으로든 하이브의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일이고 실제로 막대한 유무형의 손실이 발생했다. 민희진 대표는 왜 뉴진스 컴백을 앞두고 일을 벌여 피해를 만드느냐고 항변한다. 그런데 뉴진스도 하이브다. 결국 이것도 하이브 피해인 것이다.
이렇게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데도 하이브는 감찰에 돌입하며 분쟁을 공식화했다. 이것은 뭔가 하이브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추측을 낳았다. 민희진 대표의 어도어 측에서 입장을 냈지만, 하이브 신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를 베껴 민희진 대표가 항의했더니 하이브가 보복한다는 취지였다. 그런 정도 사유로 하이브가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고 민 대표와 사생결단에 나섰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에 민 대표 측의 입장에 설득력이 떨어졌다.
하이브는 감찰이 끝나면 법적 대응 여부 등 대응 수위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5일에 감찰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중간발표를 하며 민희진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한다고 했다. 민 대표가 하이브의 어도어 지분 매각을 압박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고, 그에 따라 ‘아티스트 중도해지’, ‘하이브를 괴롭힐 방법’ 등의 모의기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또 어도어를 빈껍데기로 만들어 하이브로부터 인수한다는 기획안에 민 대표가 ‘대박’이라고 응수하는 메시지도 확인됐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하이브 빠져나간다’라는 말을 민 대표가 했다는 진술도 받았다고 했다.
감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하이브가 고발에 나섰다는 데서 민희진 대표의 잘못이 확실히 드러났다고 간주됐다. 며칠 사이 여러 의혹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데도 민희진 대표 측은 침묵을 지켰다. 보통 분쟁이 터졌을 때 침묵하거나 법적 대응을 안 하는 쪽이 잘못한 쪽이라고 인식된다. 이런 배경에서 민희진 대표가 잘못한 게 맞는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런데 25일에 침묵하던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충격적인 격정토로의 장이었다. 우리 대중문화계 초유의 사건이었고, 한국 역사 전체를 봐도 이런 기자회견은 없었던 것 같다. 기업 대표급 인사가 욕설과 비속어를 난사하면서 2시간 이상 한풀이라도 하듯 심경을 쏟아냈다.
누리꾼 여론이 반전됐다. 이렇게 막 던지는 걸 보니 민희진 대표가 앞에서 들이받았으면 들이받았지 뒤에서 음모를 꾸밀 사람 같지는 않다는 인식이 생겼다. 장시간 동안 정신없이 토로하는 말들이 거짓말을 꾸며서 하는 것 같지 않다는 인식도 생겼다. 돌직구를 선호하는 시대다. 민 대표의 돌직구가 그 자체로 후련함을 안겼다.
더군다나 상대가 엔터업계에선 공룡이라는 하이브다. 그런 데에 직격탄을 날리니 ‘대기업 대 개인’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관료조직 아저씨들 대 크리에이터’라는 구도도 만들어졌다. 민 대표가 하이브로부터 받은 설움을 토로하자, 직장인의 애환이라며 직장인들이 감정이입했다. 이래서 기자회견 이후 민 대표를 동정하고 응원하는 누리꾼들이 많아졌다. 말투와 태도로 인해 감정적 호응이 나타난 것이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공개한 탈취 계획 메시지가 사담 또는 직장인의 푸념 같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탈취 실행 계획이 단계별로 구체화된 대화까지 나왔는데 그걸 사담이라고 일축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설사 민 대표 말이 맞는다고 해도, 계열사 대표가 임원들과 본사에 피해를 입힐 이야기들을 사담으로 나눴다는 건 비윤리적이다. 이런 이야기를 민 대표는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보는 이를 당혹스럽게 했다.
민 대표는 최초에 아일릿 얘기만 했던 것과 달리 더 자세한 이야기도 했다. 하이브와 사이가 벌어지게 된 건 르세라핌 데뷔 때부터였다고 했다. 하이브 1호 걸그룹으로 뉴진스가 예정돼 있었는데 르세라핌이 먼저 데뷔했고, 르세라핌 데뷔 때까지 뉴진스 홍보를 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 자신이 욕까지 하며 반발했다는 것이다. 또 노예 계약 같은 주주간 계약을 수정하는 문제 때문에 하이브와 확실히 틀어졌다고 했다. 또 자신이 내부고발을 했는데 그것도 하이브로부터 찍힌 이유 같다고 했다. 이래서 하이브가 자신을 모함한다는 취지로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CBS와의 인터뷰에서 민 대표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을지 모르지만 그걸 시도한 적은 없다?”는 질문에 “당연하죠”라고 답했다. 시도는 안 했어도 경영권 탈취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은 했었다는 얘기 아닌가? 또 “분노가 차오르면 막 이렇게 사표 쓰고 이렇게 그다음에 이렇게 찢어버리고 이러잖아요.”라고도 말했다. 결국 분노해서 경영권 탈취 기획을 하기는 했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그런 감정들이 언제 어떻게 막 기복이 있었는지 제가 다 기억을 못하고 그런 상황들이 또 누가 봤었을 때는 그래, 오해할 수도 있겠다.”라고도 말했다. 기억은 다 안 나지만 오해할 만한 일들이었다는 거 아닌가? 이런 부분에 대해 좀 더 정확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하이브는 처음에 민 대표 주장은 사실이 아닌 부분이 많고 반박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가, 26일에 무려 12 항목에 달하는 반박을 내놨다. 경영권 탈취는 농담일 수 없고, 민 대표가 회사가 수용할 수 없는 액수의 돈을 요구했으며, 그밖에도 민 대표의 거짓말들이 몇 개 더 있다고 했다. 또 뉴진스가 하이브의 첫번째 걸그룹이 되지 못한 건 민 대표가 자신의 별도 레이블 데뷔를 주장했기 때문이며, 뉴진스 홍보 소홀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고 했고, 민 대표가 노예계약이라고 한 건 경업금지 조항인데 올 11월부터 주식을 매각한다면 2026년 11월엔 경업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뉴진스 컴백에 일을 벌였다는 주장에 대해선 뉴진스 컴백 시점에 본사 상대 여론전을 준비하라고 한 건 민 대표 자신이고, 하이브가 수년간 민 대표의 반복되는 요구를 수용해왔으나 그런 요구가 경영권 탈취를 위한 빌드업이라는 걸 알게 돼 강경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경업금지 조항에 대해선 민 대표 보유 지분 중 25%가 하이브 동의 없이 처분할 수 없다는 독소조항에 걸린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이 조항의 수정에 대해 민 대표와 하이브 측이 협상하던 중 현재의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민 대표가 이 사안을 핵심 갈등 이슈라고 했을 정도이니 양측이 이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설명을 해줄 필요가 있다.
이상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 분쟁이 진행돼왔는데, 하이브는 민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실행이 이루어지지 않은 계획 수준이라면 유죄를 이끌어낼 수 있을 진 미지수다. 그밖에 다른 혐의에 대해 고소가 이루어질지 지켜봐야 하고, 민 대표 측에서 고소할 것인지도 지켜봐야 한다.
민 대표는 억울하게 모함 당한다는 취지로 주장하는데 이러면 상대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민 대표가 아직까지 고소를 안 하는 게 의아하다.
경영권 탈취 계획의 사실 여부는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그것과 별개로 하이브와 민희진은 애초에 잘못된 만남이었던 것 같다. 민희진 대표는 남의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 자신의 개인 사업을 해야 할 듯하다. 남의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온전히 자기 프로젝트에만 집중하면 되는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게 좋겠다. 하이브처럼 계열사들이 줄줄이 있어서 업무 협조나 양보를 하고 때로는 피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대기업 생활은 민 대표와 안 맞았던 것 같다. 하이브도 멀티레이블 체제를 안정시키려면 인재의 창의성만 보지 말고 조직 친화성도 중시해야 할 것이다.
민 대표는 하이브에 대해 상당한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들을 뉴진스 멤버와 부모에게 그대로 했다면 문제일 수 있다. 그러면 멤버들과 민 대표의 일체감은 강화되겠지만, 멤버들이 소속사를 믿지 못하게 돼 추후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진짜 피해를 당했다면 그런 사실을 투명하게 공유할 수 있겠지만, 민 대표가 너무 과하게 느낀 건데 멤버들에게 얘기해서 그게 기정사실로 인식됐다면 문제라는 이야기다.
어쨌든,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조사 결과 등을 지켜보고 판단해야 한다. 다만 어른들의 싸움판과 별개로 아티스트들의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좋겠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