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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발전, 가장 큰 걸림돌은…[최재섭 칼럼]


입력 2024.05.03 14:49 수정 2024.05.03 14:50        데스크 (desk@dailian.co.kr)

최재섭 대한럭비협회 부회장 칼럼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 대한럭비협회

나는 21년 전 대학교 3학년 때 어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럭비를 더 발전시키고 키우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많은 관계자들이 현실에 대해 불만을 얘기할 뿐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저 바다 건너 ‘협회’라는 섬에 괴물이 살고 있다고 배웠다. 그래서 우리 현실이 이런 것이라고.


나는 용기를 냈다. 정년이 보장된 공기업에 가지 않고, 우리나라 최고 기업 팀에도 가지 않고 나홀로 뗏목을 타고 괴물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 괴물을 찾아 무찌르고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뗏목을 타고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나는 이방인이 돼 또 다른 배타성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선수로 은퇴 후 대학원생, 유치원 선생님, 대학 강의, 연구원 등 일을 하면서 럭비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활동을 했고 2012년부터는 협회 이사회에 참여하며 몇몇 직책을 맡기도 했다.


허무한 결론이지만 협회라는 실체에 다가갈수록 ‘괴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상상해낸 거악(巨惡)의 실체는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내가 뗏목을 타고 괴물을 찾아 떠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20여년간 탄핵과 중도사임으로 많은 집행부가 바뀌어 왔다. 회장, 전무이사, 사무처장, 직원들까지 직간접적으로 같이 일을 하고 지근거리에서 그들을 관찰하면서 내린 결론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그 괴물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군가가 대신 할 수 없는, 해줄 수 없는 일에 있어 ‘괴물집단의 구조와 능력(협회 혹은 사무처)’을 이해해갈수록 그것을 해야 하는 ‘당사자’가, ‘종사자’가, ‘구성원’이 여전히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해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다. 계속해서 괴물이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책임과 의무에 있어 경기인 중 누구도 당사자가 되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면 수년 전에 여자럭비 대표팀 감독이 “협회가 선수들을 뽑아주지 않는다”는 말에 “감독님, 냉정하게 얘기해서 여자럭비로 돈 버는 사람 대한민국에 단 두 명이 있는데 감독님이 그 일을 해야 하는 당사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면 그 누구도 그 일을 대신 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얘기한 기억이 있다.


최저시급 받는 사회초년생 행정직원이 그 일을 알아서 할리가 없고 무급 봉사직 경기력향상위원장이 그 일을 할 수 없는 구조인데, 적어도 누군가 ‘카페트 깔아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내 현실인식이었다.


그런 환경, 지원, 정책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 원하는 사람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놀라운 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나는 럭비에 기여하고 있고 협회는 나를 위해 존재하니까 카페트 깔아놓으라’ 같은 관계설정에 여전히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지금 당장 내 위치에서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으면, 소위 비인기종목이라고 불리는 종목에서 저변과 지평을 넓히는데 여전히 배타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어떤 문제에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21년 전에 얘기한 내 현실인식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현실인식이 잘못된 건지 현실이 여전한 것인지 질문을 남겨본다.


글/최재섭 대한럭비협회 부회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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