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왕 '항복 방송' 최초인 줄 알았는데…
15일 오전에 황성수, '미국의소리' 통해
"조선 동포 여러분, 일본 무조건 항복"
배현진 "역사책이 바뀔 귀중한 내용"
히로히토 일왕이 1945년 8월 15일 정오의 '항복 방송'을 하기 4시간 앞서 '미국의소리' 단파방송을 통해 우리말로 먼저 일제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나갔던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18일 저녁 페이스북에서 "일본 히로히토의 패전 선언이 우리에게 독립을 알린 최초의 소리라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4시간 전 '일본이 항복했다'는 말을 우리말로 우리 땅에 먼저 전한 사료가 있었다"라며 "역사책이 바뀔 귀중한 내용"이라고 알렸다.
이날 배현진 의원이 공개한 미국 기록관리청에 보관 중인 '미국의소리 방송 파일'에 따르면 황성수 전 국회부의장은 1945년 8월 15일 오전 미국의소리 단파방송에서 우리말로 "조선 동포 여러분, 일본은 무조건으로 항복했다"며 "포츠담 선언에 기초한 여러 조건을 일본이 접수했다고 트루먼 대통령이 발표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군에게 총포 사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했다"고 전했다.
일제는 1945년 8월 14일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의 수락 의사를 연합국에 통보했으며, 그날 밤 9시 뉴스와 이튿날 오전 뉴스에서 정오에 '중대발표'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데 이어 정오에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방송'을 내보냈다.
다만 '항복 방송'은 일본어로 방송됐을 뿐만 아니라 "전국(戰局)이 반드시 호전된 것만은 아니며 세계의 대세도 유리하지 않다" "짐이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개국의 공동선언에 응하도록 한 것은 이런 이유" 등 '항복'이란 단어를 직접 입에 올리지 않고 완곡한 내용으로 일관돼있어,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이를 듣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 있어왔다.
반면 미국의소리 방송은 우리말로 방송된데다 "조선 동포 여러분, 다시 여러분께 반복한다. 일본은 무조건으로 연합국에게 항복을 했다"며, '포츠담 선언' 수락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의미한다는 점을 거듭 분명히 했다.
또 이 사실을 알린 직후 일제강점기 당시 LA에 있던 재미한인 독립운동단체가 녹음한 애국가를 틀기도 했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 사실을 알리는 방송 직후 흘러나온 이 애국가의 역사적 가치도 상당하다는 평가다.
'미국의소리'는 태평양 전쟁 개전 이듬해인 1942년 이승만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장의 제안에 따라 단파라디오로 한국어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이 단파방송을 몰래 듣던 사람들이 일제에 의해 검거되는 '단파방송 밀청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미국의소리' 단파방송을 실제로 국내에서 듣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해당 방송을 보도한 황성수 전 부의장은 도호쿠제국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한 뒤,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도미(渡美)해 1942년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 편집주임을 맡았다. 일제가 패망한 뒤에 귀국해 미군정청 법무고문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2대·3대·4대·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다.
배 의원실과 함께 해당 방송 파일의 진위를 검증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미국 정부와 협의해 국내로 자료를 이관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인 만큼, 해당 방송을 소개하는 코너도 새로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배현진 의원은 "대한민국 3대 국회부의장인 황성수 당시 미국 정부 앵커가 우리 조선 땅에 최초로 독립을 전한 아주 의미 있는 사료"라며 "소중한 자산을 널리 알리게 돼 보람차다"는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