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대출' 의혹에 발목 잡힌 연임
금감원 정기검사 압박…2주 연장
손태승 전 회장부터 CEO '잔혹사'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부당대출 의혹의 책임을 지고 사실상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의 강도 높은 압박이 겹치면서, 금융당국의 인사 개입 논란이 불가피해졌다.
특히 금융당국의 제재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와중 검찰이 조 행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한 게 이번 인사 결정의 결정타가 되면서 관치(官治)를 넘어선 검치(檢治) 논란이 나오는 가운데, 이같은 검찰의 칼날이 결국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에게까지 향할 지 여부가 앞으로 최대 관전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 이사회는 최근 조 행장의 연임 불가 결정을 내리고, 곧 차기 행장 후보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조 행장은 자진 사퇴한 이원덕 전 행장의 잔여 임기를 이어받아 지난해 7월부터 우리은행을 이끌어왔다. 임기 만료 예정일은 내달 31일이다.
안정적 리더십과 호실적 견인으로 연임이 예상됐으나, 부당대출 사태가 발생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우리은행은 손 전 회장의 친인척과 관련된 법인이나 개인사업자에 3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 혐의를 받고 있다. 여기에 검찰 수사로 70억∼80억원 규모의 추가 부당대출 정황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조 행장은 부당대출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으나, 위법 사실을 파악하고도 고의로 금융당국 보고를 지연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의 연이은 대형 금융사고 발생 등 '부실 내부통제'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공개적으로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며, 검찰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12조 ‘보고의무 위반’ 혐의로 조 행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조 행장은 지난 8월부터 전방위적 압박을 받으면서도 연임 의지를 이어왔으나, 우리금융 이사들은 우리은행에서 대규모 부당 대출이 발생한 만큼 임기 만료 후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독 우리금융에서만 대규모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경영진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우리은행에서만 올해 4번의 대규모 금융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업계는 '금융사고 미보고'가 최고경영자 거취까지 결정할 수준의 제재 사안인지 미지수를 표하고 있다.
임 회장은 올해 3월 부당대출 보고를 받았지만, 내부 확인을 이유로 4~5개월 가량 금감원 보고를 미뤄왔다. 회장이 신고를 지연한 상황에서 조 행장이 먼저 나서기도 상식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감원의 행보도 이례적이다. 금감원은 부당대출 관련 지난 6월부터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 대한 수시검사에 돌입했는데, 10월부터 정기검사로 전환하면서 6개월째 상시검사를 진행 중이다. 정기검사는 내년에 예정됐던 1년을 앞당긴 것으로 전례 없는 조치다. 최근에는 이 기간을 2주 더 연장했다.
타깃은 우리금융의 신사업 추진 과정으로 동양-ABL생명 인수합병의 타당성 여부다. 신사업 추진 시 자본비율 관리나 적정성 등에 있어 리스크가 없는지 집중 들여다보는 것으로, 관련 정기검사 및 경영실태평가에 들어간 상황이다. 만일 우리금융이 내부통제 미지로 3등급 이하를 받으면 금융지주회사법상 보험사 인수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1조5000억원짜리 판이 뒤집히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정기검사가 끝나도 결과 정리 때문에 1~2주 연장되는 것은 다반사"라면서도 "수시검사에 이어 예정된 정기검사까지 앞당겨 반년 동안 특정 금융사를 검사하는 것은 전에 없던 상황이긴 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의 칼끝이 임 회장까지 겨냥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이 우리금융 압수수색에서 임 회장의 사무실까지 들여다 봤고,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검찰에 협조하겠다'다는 입장까지 내놓은 만큼, 단순히 조 행장이 물러난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부통제 중요성을 계속 강조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면, 경영진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법에 근거해 원칙으로 대응하면 충분한데, 금감원이 마치 칼을 든 정의로운 무사처럼 징벌적 조치를 행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