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좋아하는 좌파 정치 리더들
면책특권 뒤에서 대국민 협박까지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가 장난인가
더불어민주당의 리딩그룹을 비롯한 좌파의 핵심세력은 ‘혁명’을 아주 좋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가 ‘혁명 예찬론자’였다. 그는 자신을 당선시킨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시민혁명’으로 불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제19대 대선에서 승리를 ‘촛불혁명’의 결과라고 역설했다.
‘혁명’은 구체제 구질서 구제도 구가치체계 등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일이다. 당연히 혁명 후의 국가와 사회는 구조적으로 달라져 있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의 경우, ‘언론과의 전쟁’을 통해, 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으로 혁명의 성과를 입증하려 했다.
구체제(앙시앵 레짐)를 무너뜨리고 그 빈 곳에 새로운 정체, 질서, 구조, 가치체계 등을 채워 넣었다는 점에서 프랑스 혁명은 인류사적 대사건, 대혁명이 될 수 있었다(물론 이 변화에는 오랜 시간과 희생과 비용이 수반됐지만). 노·문 두 대통령의 ‘혁명’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혁명을 좋아하는 좌파 정치 리더들
노 전 대통령은 개인적인 구원(舊怨)까지 실어 언론 길들이기를 임기 내내 시도했지만, 언론계뿐만 아니라 사회·국가 차원에서도 대(大) 소란(騷亂) 시대를 열었을 뿐이다. 문 전 대통령의 적폐 청산 작업은 되레 계층 간·이념진영 간의 대립·증오의 감정만 부풀려 놨다. 노·문 집권기를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총체적 혼란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내 생각으로는 그렇다.
지금 사실상 대한민국의 통치권자 위상을 확보한 양하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혁명’을 아주 좋아하는 인상이다. 그가 예전에 대선 출마 선언 후 처음으로 낸 책이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2017년 1월)였다. 그 전해 겨울 촛불집회에 나가 독한 연설을 한 것으로 ‘사이다’ 칭호를 얻었다. 그 대중적 이미지를 발판 삼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고,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그가 이루어낼 ‘혁명 대한민국’이 어떤 것일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현실적 의문이 앞선다. 중범죄는 아니었다고 해도 네 번의 전과기록을 가진 데가 지금은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을 감당해야 하는 피고인 겸 피의자 신분이다. 국회의원으로서, 거대 야당의 대표로서 현직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단죄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여기는지 궁금하다.
수사와 재판을 회피하고 지연시키기 위해 그가 보인 기행기태(奇行奇態)는 훗날 처세술, 위기 돌파술의 교본이 될 법도 하다. 그는 모든 혐의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고 ‘정치보복’ ‘검사독재’라며 윤 정권과 맞짱뜨기를 계속해 왔다. 그러다 지금은 처지가 뒤바뀌었다.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몰아세우며 ‘파면’과 ‘징벌’의 과정을 지휘하는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전혀 없을까? 이러는 게 정의의 원칙에 부합할까?
‘혁명’은 ‘폭력’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구체제를, 그것도 단번에 전복(顚覆)시키는 일이 조용하게 평화적으로 이뤄질 수야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민주당 사람들의 태도나 언어도 폭력성이 느껴질 정도로 거칠다.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7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현안 질의 중 이렇게 국민의힘을 공격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김 의원은 소리를 질렀다.
면책특권 뒤에서 대국민 협박까지
변호사이기도 한 사람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아예 무시하고 동료 의원들을 ‘내란 공범’으로 공공연히 단정했다. 그에게는 윤 대통령도 이미 ‘내란 수괴’다. 사법부에 의한 판단이 나기도 전에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을 이렇게 공격해도 되는지는 법률가인 김 의원이 더 잘 알 일이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헌법 제45조)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말 할 수 있을까? 그 특권을 이용해 아무 말이나 마구잡이로 하는 것이라면 비겁하고 교활한 여우의 화법이다.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은 한술 더 떴다.
지난달 24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그는 이렇게 대국민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입 다물어! 우리가 걸면 다 걸리는 거야. 행여라도 윤 대통령과 여당 역성들고 우리 당 비난할 생각은 말라고!”
이런 뜻으로 들리는데 잘못들은 건가?
언어폭력도 폭력이다. 면책특권은 국회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이지 무한정 휘둘러도 되는 적극적 권리가 아니다. 그런데도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이를 무소불위의 특권으로 여겨 언어폭력을 일삼는다. 이들이 ‘민주주의’ 운운할 때마다 역겨움을 느끼게 되는 게 그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혁명 중에도 프랑스 대혁명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 혁명의 지도자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는 혁명과 공포의 불가분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일 도덕이 평화시 민주적 정부의 대지주(大支柱)라고 한다면 혁명시에 있어서 민주적 정부는 마땅히 도덕과 공포에 의지하여야 할 것이다. ……공포는 바로 신속하고 준열하고 강직한 정의인 것이다.……공포는 도덕의 방사물(放射物: ~로부터 나온 것)이다. 공포는 전제정부의 대지주라고 한다.……혁명의 정치는 폭정에 대한 자유의 전제정치다”(크레인 브린튼 外, 세계문화사).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가 장난인가
혁명을 꿈꾸는 사람, 혁명의 전사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로베스피에르의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길 법하다. 폭군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공포와 폭력이 필수적인 수단이라는 인식에 공감하거나 공유하고 있으니까 함부로 국민까지 싸잡아 협박하는 것 아니겠는가(프랑스 대혁명기의 공포정치를 한 번쯤이라도 떠올려 보기 바란다).
“사법부의 판단은 필요 없어. 우리가 내란이라면 내란인 거야.”
이런 뜻인 것 같은데, 이게 자유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서 국민이 들어도 되는 말인가? 이 사람들은 ‘고소·고발 위협’에 이력이 난 듯,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40%에 육박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해당 여론조사업체에 대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그야말로 ‘안 봐도 비디오’다.
입에 ‘윤석열 내란 수괴’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탄핵소추안에서 ‘내란죄’를 제외하겠다고 하는 것도 어이없다. ‘내란죄’ 여부를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기면 심리 시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이라는 판단인 것 같다. 그렇게 하다가는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항소심과 상고심 판결이 먼저 날 수도 있으니까.
‘내란죄’를 소추안에서 빼려면 국회 의결 과정을 다시 거치든가 해야 할 텐데, ‘내란죄’는 철회하되 ‘내란 행위’는 심리하니까 달라질 것이 없다고 우긴다. 국회의 대리인이 지난 3일의 2차 준비기일에서 이 결정이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한바’라고 말했다. 헌재가 코치를 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말썽이 되니까 양측이 한목소리로 아니라고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를 가지고 장난하자는 건지 뭔지.
내란죄는 내란 행위에 의해 성립된다. 내란죄가 배제되면 ‘내란 행위’란 있을 수가 없다. 그냥 범법 행위일 뿐이다. 이는 헌재의 소관이 아니다. 헌법사항이 아니라 형법 사항이기 때문이다. 굳이 헌재가 이를 심리하겠다면 형법상의 범죄 수사와 형사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일개 시민의 상식으로는 그렇다.
헌재는 이 문제로 공정성 논란이 커질 것을 우려한 듯 7일 “여야를 떠나 주권자인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한 가지 의문은 생긴다. ‘양심’은 재판관 각자의 것인가, 아니면 법관 집단의 것인가. 재판관의 양심은 재판관 개인의 이념이나 가치관과 엄격히 구분될 수 있는 건가? 아주 쉬운 말로 믿음이 가게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글쎄.
어쨌든 우리 국민들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아내고 있다. 몇몇 유별난 정치꾼들 때문에….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