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원로들, 이재명 향해 "점령군 모습 안돼"
'카톡 검열''여론조사법'…점령군처럼 행동하는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나는 법
말의 힘은 오묘해서, 부정하면 오히려 강력해져
설 명절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 등 당 원로들이 이재명 대표를 만나 "점령군 모습은 절대 안 된다. 국민께 최대한 겸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비공개 오찬 내용은 조승래 수석대변인이 취재진에 직접 브리핑하며 알려졌다. 그러자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에서 스스로 점령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의아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조 수석대변인이 당 원로들의 '점령군' 조언을 공개적으로 브리핑해 널리 알린 것은, 아마도 범야권 200석을 이끄는 이재명 대표가 강자로 비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대통령·국무총리·장관들 탄핵이 줄줄이 이어지는 정국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 수사를 받고 여권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높게 나타나자, 역풍을 우려해 이 대표의 낮은 자세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말의 힘은 참으로 오묘해서, 어떤 것을 부정하면 할수록 오히려 강력해지는 속성이 있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후 '닉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기꾼'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유명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이러한 말의 속성을 잘 설명해 놓았다. 사람들은,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이 여권 관계자가 "민주당이 실수한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갸우뚱거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명은 점령군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오히려 이 대표에겐 '이재명=점령군'이라는 이미지가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윤석열 정부의 29명을 탄핵하면서 이 대표가 무소불위의 힘을 보여주고 있기에, 현재 상황과 이 대표 점령군 이미지가 더없이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당 원로들이 우려해 따로 조언을 건넬 만큼 '점령군 이재명'의 모습이 여의도에서 매일매일 보여지고 있다. 민주당을 욕하면 '대국민 카톡검열', 민주당 지지율이 낮으면 '여론조사 업체 관리법'을 꺼내들고, 역대 대통령도 웬만하면 만나지 않았던 시중은행장들을 만나는 등 진짜 점령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아무리 이 대표를 점령군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국민에게 외쳐도, 점령군 그 자체가 된 듯이 행동하는 사람은 바로 이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