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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여성국극이 왜 있어야 하냐고요?” [다시, 여성국극②]


입력 2025.01.30 14:01 수정 2025.01.30 14:0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여성국극제작소 박수빈 대표 인터뷰

"여성국극의 '지속가능성' 찾는 게 평생의 과제"

“공연이 끝나면 포댓자루에 돈을 넣고, 발로 ‘꾹’ 밟아서 또 넣고…. 가드를 끼고 집에 와야 할 정도였대요. 집에 오면 자루 속에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서 다리미로 그걸 다리기 시작하는데,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랄 정도였다고요.”


여성국극제작소 박수빈 대표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여성국극 3세대 계승자로 불리는, 여성국극제작소 박수빈 대표가 ‘1세대’로 불리는 조영숙 선생에게 전해 들은 1950년대 여성국극 전성기 시절의 이야기다. 워낙 짧았던 여성국극 전성기였기 때문에 박 대표로서는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다. 그는 “돈 자루는 고사하고, 여성국극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비록 1960년 이후 급격한 내리막을 걸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국극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무대지만 여성국극은 종종 무대에 올려졌고 박 대표와 같은 젊은 여성국극 배우들이 여전히 계보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 대표는 2020년 안산에 여성국극제작소를 설립하고 여성국극의 계보를 이으면서 동시에 현재와 소통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대에 여성국극이 왜 있어야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여성국극제작소도 만들고, 페스티벌도 하고, 쇼케이스도 해봤어요. 그런데 그런 소릴 들으니까 억울했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레전드 춘향전’(2023)을 준비했어요. 그랬더니 그제야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정말 세상 일 참 알 수 없어요. 하하.”


판소리를 배우다가 15살 때 조 선생의 여성국극 ‘춘향전’에 참여하면서 여성국극에 입문한 박 대표가 여성국극제작소를 설립한 가장 큰 이유는 ‘제도화’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여성국극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사실상 과거 여성국극의 쇠퇴가 매체의 변화라는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스타성에만 의존했던 내부적 한계가 근본적 이유로 꼽혔기 때문이다. 즉, 제도화를 여성국극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여성국극 3세대 배우이자 여성국극제작소 공동대표인 박수빈(오른쪽)과 황지영 ⓒ여성국극제작소

“‘이 시대에 왜 여성국극이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야 했죠. 예전 것을 복원하고 선생님께 배웠던 것을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에 여성국극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자의든 타의든 ‘3세대 계승자’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상, 그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계승만 하는 게 아니라 이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국극은 만들어진 지 100년도 안 된 장르예요. 케케묵은 전통처럼 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여성국극에도 천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드라마 ‘정년이’가 방영되면서 대중에게 생소하게 여겨졌던 장르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그간 여성국극을 알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정년이’가 이렇게까지 큰 인기를 얻을 줄은 몰랐어요. ‘레전드 춘향전’ 때도 여러 방송사에 여성국극을 소개하는 메일을 보내고, 실제로 출연도 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거든요. 유튜브에서는 1000만원이 넘는 돈을 요구해서 ‘참 어렵다’ 싶었죠. 그러던 중에 ‘정년이’가 터지고 여성국극이 알려져서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미디어의 힘이 이렇게 대단하구나 느꼈어요. 예전엔 여성국극을 설명하려면 한참이 걸렸는데, 이젠 ‘정년이 보셨죠?’라고 한마디로 설명이 되니까요. 한숨 덜었죠. 하하.”

'벼개가 된 사나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만 여성국극에 대한 대중적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박 대표가 갖는 부담도 커졌다. 당장 최근 아르코예술극장에 올려졌던 여성국극제작소의 신작 ‘벼개가 된 사나히’만 해도 ‘정년이’ 속에서 그려졌던 여성국극 무대와는 결이 다르다. ‘정년이’를 기대하고 찾은 관객이라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떤 분들은 왜 ‘호동왕자’ ‘대춘향전’ 같은 옛날 작품을 다시 하지 않느냐고 비판하기도 해요. 그것들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전통과 새로운 작품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국극은 무대에서 연기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넘어 위로와 감동의 메시지를 통해 그 시대의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전성기를 누린 장르라고 생각해요. 과거에 머무른다면 여성국극의 예술적 가치도 결코 인정받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국극이 한 시대에 인기 장르였고, 문화였음에도 사라져가는 게 가슴 아파서 꼭 알리고 싶었어요. 본의 아니게 알려지게 됐으니 새로운 목표를 가져야겠죠? 이제 ‘지속가능성’을 찾아가려고요. 아마도 이건 평생의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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