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한목소리로 '尹 비상계엄' "잘못됐다"
조기대선 기대감 낮아…"특별히 희망하는 인물 없어"
진보층, 차기 대권주자로 김부겸·김동연 언급도
역대 선거에서 중도층과 2030 청년층은 '캐스팅 보트'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득표율 차이가 1%도 되지 않았던 초박빙 승부의 2022년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정치의 중심이자 중도·청년층이 주를 이루는 서울에서 윤 대통령(49.2%)은 당시 경쟁 상대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44.2%)를 제치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정국 속 용산을 향한 서울의 민심은 설 연휴 폭설처럼 싸늘하고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황금연휴에도 불구하고 텅 빈 거리에서 시민들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에 대해 어렵게 입을떼며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시민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으로 극에 달한 피로감과 깊어진 정치적 냉소를 여실히 느끼게 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마음으로 윤 대통령에게 한 표를 던졌던 중도층과 보수 성향의 지지자들마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고, 이념 갈등이 극으로 치닫게된 우리의 현실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마포구의 경의선숲길에서 만난 회사원 이모(30세·남)씨는 보수 정당 지지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현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그냥 무념무상의 상태"라고 짤막히 답했다.
이어 "(이제는) 크게 관심도 없고, 이 상황 자체가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지금 마음 같아선 조기 대선이 치러지더라도 투표장에 가기 싫다"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며 정치적 피로와 무력감을 토로했다.
마포구에 거주하는 중도 성향 대학생 송모(20대·여)씨는 "비상계엄 선포는 국가의 안보와 질서를 지키기 위한 긴급한 조치일 수 있지만, 실행이 지나치게 신속하거나 과도할 경우 민간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했다"며 윤 대통령의 결정이 섣불렀다고 비판했다.
또 "여야 간 극단적인 대립이 정책 집행에 큰 장애물이 되고, 사회적 갈등을 더 심화시키고 있다"며 "이들의 대립이 계속된다면 국가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도권 싸움이 한창인 여야를 향해 쓴소리를 뱉었다.
차기 대권주자와 관련해서는 "현재로서는 특별히 희망하는 인물이 없다.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각 후보들의 면면을 신중히 검토한 뒤 판단하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나라를 이끌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며 실현 가능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한다면 호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과거 정치적 태도나 발언, 실수 등으로 논란이 됐던 인물이라면 비호감으로 여겨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대 정모(28세·남)씨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정말 미친 것 같다"며 거세게 질타했다. 이어 "차기 대선에서 뽑을 사람이 없다"며 "굳이 따지자면 나는 보수에 가깝지만 여권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나, 야권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고 체념한 듯한 반응을 보였다.
설 연휴 공덕역 인근 먹자골목을 찾은 보수층 윤모(60대·남·서초)씨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을 계속 지지하고 있지만, 향후 행보가 앞으로의 지지 여부에 영향을 미칠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어떤 인물을 기대하는 지 묻자 "없다"고 답하면서도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도덕성·공정성을 겸비한 인물이 대권주자로 나서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야당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같은 서초구 거주자 황모(60대·남)씨는 현 사태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도무지 납득할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씨는 "비상계엄 사태가 국가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며 "게다가 국회의 정치적 대립은 국민의 이념대립으로 이어지고 극과 극의 좌우로 치닫게 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진보 지지자인 황 씨는 차기 대권주자로는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언급했다. 그는 이 대표에 대해 강력한 리더십과 업무능력을 칭찬하면서도 "사법리스크와 사악한 이미지가 함께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나서려면 사법 절차를 빨리 밟는 게 야권에서도 유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