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필품 대량 구매 분위기 확산
물가상승 속 ‘가성비 소비’ 각광
향후에도 지속 성장할 것으로 분석
잇단 규제로 몸살을 앓던 유통업계가 ‘창고형 할인점’으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생필품과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데다, 높은 물가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소비가 각광받으면서다.
기존에는 ‘대용량 상품=코스트코’라는 인식이 절대적이었지만, 이제는 옛말이 됐다. 국내 유통업체들이 나름의 경쟁력을 앞세워 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가고 있다. 오프라인 점포들이 온라인 채널에 밀리며 부진한 가운데 창고형 할인점이 새로운 대안으로 거듭난 것이다.
온라인 전환 등으로 대형마트 오프라인 지점이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창고형 할인점 점포는 증가하는 추세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는 2010년대 중후반까지 확장일로를 걷다가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고 대형마트 성장이 둔화되면서 구조 조정 수순을 밟아 왔다.
그러나 창고형 할인점을 출점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반전을 맞았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위축되는 가운데 창고형 할인점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고물가 속에서 가성비 상품이 다시 주목받으며 창고형 할인점은 올해 적극적인 출점에 나설 계획이다.
창고형 할인점은 대규모 매장에서 대용량 상품을 묶음 단위로 저렴하게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최근 경기 불황이 깊어지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인기를 끌고 있다. 창고형 할인점의 상품 가격은 대형마트보다 평균 10∼15% 싼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트레이더스의 지난해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성장했다. 이마트가 최근 공개한 2024년도 트레이더스의 연간 매출은 3조5495억원으로 전년 대비 5.2% 늘었다. 연간 영업이익은 924억원으로 전년보다 59% 상승했다.
이마트의 할인점 사업부(이마트)와 전문점 사업부(노브랜드, 일렉트로마트, 몰리스펫샵) 등의 실적이 다소 부진한 가운데 트레이더스가 유일하게 성장 곡선을 그리면서 이마트 전체 실적을 이끌어 ‘에이스’로 급부상한 것이다.
경쟁사 코스트코도 지난해 개선된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코스트코는 2024 회계연도(2023년 9월~2024년 8월) 기준 매출 6조5301억원, 영업이익 218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7.6%, 15.8% 늘어난 수치다.
반면 일반 대형마트는 줄어드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 점포는 2020년 160개에서 지난해까지 6개가 사라졌다. 롯데마트의 국내 점포는 지난해 110개로 전년보다 1개 감소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말 기준 127개로 전년보다 4개 줄었다.
일반 대형마트 점포수가 꾸준히 줄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내수 침체로 인한 경기 불황과 온라인 쇼핑 시장의 급성장이 원인으로 손꼽힌다. 경기 둔화에 따른 소비침체, 1인 가구의 증가, 편의점으로의 고객 이탈, 의무휴업 등 각종 악재가 커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다만, 대형마트 업계는 매장 리뉴얼을 통한 체질 개선과 함께 수익성이 없는 매장은 과감히 정리하는 구조조정도 불사하는 등 생존을 위한 전략 구상과 이행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고 있다. 상품 구색 강화 등 오프라인 점포의 강점을 극대화한 대형마트로 빠르게 진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창고형할인점이 대형마트 대비 가격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이런 고물가 시국이나 불황 때 특히 수요가 커진다”며 “가격 경쟁력이 높은 이유는 분류별로 1-2개 브랜드·상품 만을 대량으로 계약해 대용량으로 운영하고, 자체 마진도 낮게 설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향후에도 창고형 마트는 지속 성장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이어 이랜드까지 창고형 할인점 시장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저마다의 전략으로 출점을 늘리고 있다. 창고형 할인점으로 고객들의 충성도가 매우 높은 편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교외로 주말 나들이를 떠난 김에 인근 창고형 할인점에 들러 쇼핑하고 돌아오는 트렌드가 생겨난 데다, 물가 급등 여파로 한 푼이라도 싸게 물품을 구입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코스트코가 독식하던 이 시장에 경쟁사들이 저마다의 전략을 갖고 뛰어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고형 할인점 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각 업체들은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코스트코 코리아는 타 기업 매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해외 직수입 제품과 PB브랜드 ‘커클랜드’로 고객의 충성도를 유지하는 상황이다.
그 대항마로 이마트에서 운영하는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 홀세일 클럽(이하 트레이더스)과 롯데쇼핑에서 운영하고 있는 롯데마트 맥스가 있다. 양사는 비회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접근성을 높였다. 여기에 저마다 혜택이 다른 유료 회원제도 도입해 함께 운영 중이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최근 몇 년간 가파르게 성장하며 코스트코의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3년 유료 회원제를 도입한 이후 실적이 개선됐다. 트레이더스는 지난해 처음으로 영업이익 1000억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마트의 핵심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이다.
롯데마트 맥스는 전신인 '빅마켓' 시절에는 연회비를 내야만 매장 이용이 가능했지만, 2020년 연회비 제도를 폐지했다. 무료 회원제를 강조하지만, 유료 회원과 비회원 간 가격 차이를 둬 실질적으로 유료 회원 가입을 유도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맥스는 현재 영등포점을 비롯해 금천점, 송천점 등 6개 매장을 운영 중인데 지난해 매출이 직년 연도 대비 5% 가량 늘었고, 올해 1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물가 장기화로 인해 창고형 할인점에 대한 인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라며 “상품이 대용량임에도 타 유통채널 대비 독보적인 할인가로 인해,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고객들과 공동구매를 하는 1인 가구 소비자 방문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