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137분
봉준호 감독이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에 이어 다시 한번 자본주의가 만든 계급 안에서 차별과 혐오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미키 17'은 우주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여전히 반복되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담아냈다.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는 익스펜더블(소모품)로, 죽을 때마다 다시 프린트(복제)되는 존재다. 인간들은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미키 같은 익스펜더블을 만들어냈다. 그는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되며, 죽으면 버튼 하나로 다시 태어난다.
미키의 모든 인체 정보는 휴먼 프린트기에 저장되어 있으며, 그는 자신이 죽었던 기억을 그대로 안고 다시 살아난다. 표면적으로는 '불사의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으로 취급되는 구조 속에서 존재하는 셈이다.
사람들은 미키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당연하게 여기며, 그를 마치 기계처럼 소모한다. "네가 선택한 일이잖아"라는 말로 모든 차별을 정당화하는 장면은 현실에서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억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복제에는 절대적인 규칙이 있다. 한 시점에 단 한 명의 미키만 존재할 수 있으며, 만약 두 명이 존재하면 반드시 하나는 제거되어야 한다. 하지만 미키 17이 죽지 않는 바람에 시스템이 오판해 18번째 미키를 프린트한다. 이로 인해 원칙이 깨지고, 두 명의 미키가 동시에 존재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게 두 미키는 위험한 동거를 시작한다.
17과 18은 동일한 존재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17이 순진하고 착하다면, 18은 자유롭고 막무가내다. 봉준호 감독은 이 숫자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에서 17세는 아직 미성년이지만, 18세는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나이다. 미키 17과 18의 대비는 단순한 성격 차이를 넘어 통제받는 존재와 자유를 쟁취한 존재의 대비를 상징한다.
또한 원작에서의 7번의 미키 죽음을 17번으로 늘린 건 미키가 더욱 불쌍하고 측은한 존재로 보이도록 하기 위함이다. 수없이 죽고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미키는 점점 더 소모품처럼 여겨지며, 그의 인간성은 철저히 무시된다.
여기에 더해 영화는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서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과정을 가차 없이 보여준다. 독재자 마셜(마크 러팔로 분)과 그의 아내 일파(토니 콜렛 분)는 황당한 논리와 조작된 메시지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대중은 그들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른다. 그들의 언행은 우스꽝스럽고 넌센스 투성이지만, 현실에서 반복되는 독재와 정치 선동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람들이 불안할수록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따르고, 정치와 종교가 결합하면 더욱 강력한 지배 구조가 형성된다는 점을 영화는 신랄하게 꼬집는다.
혐오와 배제의 논리는 블랙코미디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을 정면으로 비춘다.
미키 17은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점점 자신이 누구인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숫자를 떼어내고 ‘미키 반스’라는 본래의 이름을 되찾는다. 이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은 꽉 닫힌 해피엔딩을 선보인다. '설국열차'가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열린 결말을 택했고, '기생충'이 계급 간 격차의 씁쓸한 현실을 담았다면, '미키 17'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결말을 맞이한다. 이는 곧 현재를 살아가는 ‘소모품 같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미키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메시지다.
봉준호 감독은 이번에도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자본, 종교, 정치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착취하는 구조에 무감각해지지는 않았는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등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을 통해 이러한 화두를 제시하며 여전히 우리 시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28일 개봉. 러닝타임 13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