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는 15일(한국시각)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 여자 싱글 쇼트 프로그램에서 69.97점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김연아는 두 번째 점프에서 롱 에지 판정이 나와 아쉽게 70점 돌파에 실패했지만 2위인 카롤리나 코스트너(66.86점)에 약 3점 앞서 생애 두 번째 세계선수권 우승에 바짝 다가섰다.
물론 아직 프리스케이팅 연기가 남아있기 때문에 섣불리 우승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김연아는 시니어 무대 데뷔 후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한 15번의 대회 중 무려 11차례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승확률이 73.3%에 이르는 셈이다. 반면, 쇼트 1위 후 최종 결과가 뒤집힌 4번의 이변에서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006-07 그랑프리 스케이트 캐나다 - 쇼트 62.68(1위)+프리 105.80(4위)=168.48(3위)
피겨 여왕이 성인 무대에 데뷔한 대회였다. 당시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지만 ‘종달새의 비상’ 선율에 맞춰 연기를 펼친 프리스케이팅에서 감점 등의 이유로 4위에 머물렀다.
당시 김연아는 대회 후 인터뷰에서 “주니어와 시니어 무대의 차이점을 보고 느꼈다. 관중이 많아 긴장을 많이 한 것 같다.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급기야 김연아는 무릎과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된 훈련을 소화하지 못한데다가 스케이트 구두가 내려앉는 최악의 상황과 맞서 싸워야 했다. 당시 우승은 후일 밴쿠버 올림픽에서 맞붙었던 조애니 로셰트가 차지했다.
2006-07 세계선수권 - 쇼트 71.95(1위)+프리 114.19(4위)=186.14(3위)
첫 번째 출전한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는 당당했다. 일본에서 열린 대회. 당연히 세계 피계의 이목은 일본의 피겨 천재라 불린 아사다 마오에게 집중됐다. 하지만 의외로 김연아가 1위에 오르자 특히 일본 언론계는 큰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에도 김연아는 아사다 마오가 아닌 고질적인 부상과 싸워야 했다. 결국 두 번의 점프 실수가 있었던 김연아는 최종 순위에서 3위로 내려앉았고, 트리플악셀을 성공시킨 아사다는 5위에서 2위로 점프했다. 정작 우승은 안정된 연기를 펼친 안도 미키(일본)의 몫이었다.
김연아 역대 쇼트프로그램 1위에 오른 대회
2008-09 그랑프리 파이널 - 쇼트 65.94(1위)+프리 120.41(2위)=186.35(2위)
김연아가 국내 팬들에게 첫 선을 국제대회다. 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이 대회는 개막 전부터 팬들의 뜨거운 관심과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고, 이는 곧 김연아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급기야 쇼트프로그램 ‘죽음의 무도’ 음악이 끝나자 빙판에는 인형과 장미꽃 비가 쏟아지는 유례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다음날 프리스케이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팬들은 아예 연기를 펼치기 전부터 “김연아!”를 연호했다. 김연아로서는 집중이 될 리 만무했다. 결국 경기 후 김연아는 “많은 응원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부담을 떨치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이 대회 우승은 아사다 마오에게 돌아갔다.
[동영상]GP 파이널 당시 국내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은 김연아
2010-11 세계선수권 - 쇼트 65.91(1위)+프리 128.59(2위)=194.50(2위)
김연아가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참가한 대회다. 이미 자신의 꿈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였기에 은퇴를 놓고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시즌 중에 치러진 그랑프리 대회는 불참을 선언했고 세계선수권에만 나가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김연아는 일명 ‘반쪽 선수’라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의 결별 등의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일본 지진의 여파로 러시아로 자리를 옮겨 치러진 대회에서 김연아는 예상을 깨고 쇼트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튿날 프리에서 점프 시도를 주춤거렸던 김연아는 안도 미키에 1.29점차 뒤진 은메달에 머물고 말았다. 김연아는 대회 후 “드디어 끝났다. 대회 참가의 목적은 금메달이 아니었다.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후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