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지점장 대규모 계약해지' 논란 증폭 왜
전국 지점 축소·재편하면서 지점장 50여명과 계약 조기해지
1년 마다 재계약 기다리는 비정규직 신세 "받아들일 수밖에"
노조원 아닌 탓에 공식 대응도 불가…일자리 잃고 속앓이만
새 정부가 연일 비정규직 축소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흥국생명이 1년 단위 계약직 지점장들을 대상으로 계약해지를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흥국생명의 지점장들은 모두 해마다 회사와 계약을 맺는 형태로 일을 해 왔는데, 최근 흥국생명이 수십여개의 지점을 없애면서 해당 지점장들에게 조기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이다.
특히 최근 보험업계에 계약직 지점장에 대한 정규직화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조치에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3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최근 50여명 지점장들과 위임직 계약을 해지했다.
흥국생명은 이번달 초부터 지점 효율화 전략을 진행하면서 전국 140개 지점을 80개로 축소 재편하기로 했다. 흥국생명은 이 과정에서 없애기로 결정한 지점 지점장들과의 계약 해지를 완료했다.
흥국생명이 이처럼 한 번에 지점장들을 정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모두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2005년부터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를 시작하고 지점장들 전원을 계약직으로 운영해 왔다. 실적에 대해 회사가 수당을 지급, 생산성과 조직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이유에서다. 이때부터 흥국생명의 지점장들은 1년 단위로 회사와 위임 계약을 맺어 왔다.
이런 구조 때문에 흥국생명 지점장들은 회사가 지점을 없애겠다며 요구하는 조기 계약해지에 반대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흥국생명은 이들에게 계약을 미리 해지해주면 4~6개월치 급여에 해당하는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계약 기간을 채우겠다고 몇 개월을 버텨봐야 당장 내년 계약 연장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위로금이라도 받는 게 지점장들로서는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결국 겉으로만 보면 흥국생명의 지점장들은 회사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지점을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갑작스런 계약해지 통보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셈이다.
더욱이 이들은 흥국생명의 정식 직원도 아닌 탓에 회사 노조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회사의 사실상 해고 통보에 공식적으로 보호받을 방법이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흥국생명 내부 관계자는 “갑작스런 계약해지 권유를 받은 지점장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분위기”며 “더군다나 노조를 통해 공식적인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속만 끓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흥국생명에서의 갈등을 계기로 보험업계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 될 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2000년대 초반 주로 외국계 보험사들을 중심으로 등장한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는 점점 사양 추세다. 더욱이 새로 들어선 정부가 비정규직 감축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국내 보험사들이 한 때 경쟁적으로 사업가형 지점장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정착돼 운영되고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며 "10년 이상 이 같은 방식으로 점포를 운영해 오던 한 보험사가 올해 들어 사업가형 지점장들을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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