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작더라도 기억에 남는 배우 되고 싶어
앙상블=갓상블, 대중의 인식 변화에 감사
<뮤지컬에서 주연배우의 상황을 드러내거나 사건을 고조시키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코러스 혹은 움직임, 동작으로 극에 생동감을 더하면서 뮤지컬을 돋보이게 하는 앙상블 배우들을 주목합니다. 국내에선 ‘주연이 되지 못한 배우’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합니다.>
올해 3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는 뮤지컬 배우 백승리는 하나의 작품에 참여할 때마다, 마치 하나의 도시를 여행한 듯한 쾌감을 느낀다. 2018년 뮤지컬 ‘삼총사 10주년 기념 공연’을 시작으로 ‘알타보이즈 인 도쿄’(2018) ‘광화문연가’(2018) ‘벤허’(2019) ‘여명의 눈동자’(2020)에 참여한 그는 파리에서 도쿄, 서울, 로마를 지나 조선까지의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이제 여섯 번째 작품인 뮤지컬 ‘올 아이즈 온 미’(2020)를 통해 웨스트사이드로 달려가고 있다.
‘올 아이즈 온 미’는 2007년 최초의 랩 뮤지컬로 화제를 모은 뒤 초연 이후 시즌 5까지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온 ‘래퍼스 파라다이스’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힙합 음악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투팍 아마루 사커와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사건을 모티브로 우리시대 미디어와 가짜 뉴스가 만들어 내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품에서 백승리는 서부의 유명그룹 디지, 기자, 정치인, 갱스터 등 다양하고 매력적인 역할들을 소화한다. 소냐를 비롯해 김용진, 정인성(크나큰), 윤비, 서동진, 염승윤, 이민재, 양병철, 방온, 최희재, 김민정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 5월 1일부터 6월 28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된다.
D: 학창시절부터 뮤지컬 배우에 대한 꿈이 있었나?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생 시절, 연강홀에서 했던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을 봤을 때였어요. 우연히 1열에서 보게 되었는데 가까이에서 본 배우들의 살아있는 모습을 보고 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도 무대 위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들면서 배우를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처음 준비를 시작하면서 공연과 관련된 전공을 하지 않아 주눅이 들었지만, 따로 많은 시간을 들여 춤을 배우고 준비하며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지만, 작품을 할 때 마다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지금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한 마음입니다“
D: 뭐든지 ‘처음’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다. 백승리 배우도 꿈꾸던 무대에 처음 오르게 됐을 때의 벅찼던 감동이 여전히 남아 있나?
“그럼요. ‘삼총사10주년기념공연’(2018)으로 뮤지컬 배우의 일을 시작하게 됐거든요. 연습기간 때에는 처음이라 서툰 것이 많아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첫 공연을 마무리 하고 나서 ‘상상만 했던 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연습기간 동안 힘들었던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지막 공연 날에는 잘 마무리했다는 후련함과 아쉬움이 뒤섞여 펑펑 울었던 것 같아요. 하하“
D: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도 데뷔작인가?
“그건 아니에요. 사실 기억에 남는 작품은 뮤지컬 ‘광화문연가’(2018)라고 말하고 싶네요. 배우가 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하우스어셔(공연장 안내원)일을 1년 정도 했었습니다. 그 때 당시 세종문화회관에서 ‘광화문연가’ 초연이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수십 번도 넘게 그 작품을 보면서 일했었는데, 그 다음해 ‘광화문연가’ 재연 공연에 앙상블로 참여하게 된 거죠. 기분이 굉장히 새롭더라고요.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그 곳에 올라서 공연을 한다고 생각하니 더 벅차오르는 것도 있었고요. 저에게는 굉장히 뜻 깊은 작품입니다“
D: 공연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올 아이즈 온 미’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올 아이즈 온 미’ 오디션에 지원할 때 쯤 공연하고 있던 작품과 연습기간이 일부 겹쳐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요. 합격하기 어려울 것 이라 생각하고 지원하지 않으려 하다가 오디션 경험이라도 쌓자는 마음으로 원서 마감 마지막 날에 지원을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올 아이즈 온 미’에 합격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게 인생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하하”
D: 연습이 한창일 텐데.
“지금까지 해왔던 공연은 대사량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는데요. 이번 ‘올 아이즈 온 미’에서는 솔로 노래와 대사가 많아 대본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분에 이번 작품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D. 뮤지컬에서 ‘앙상블’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데, 앙상블이 어떤 역할을 한다고 설명할 수 있을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무대 위를 가상의 공간을 진실로 만들어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앙상블들의 움직임과 합창이 장면을 촘촘하게 채워주면서 말 그대로 배우들의 ‘앙상블’을 이루었을 때 더욱 완벽한 공연이 만들어지고 관객분들께 감동을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D. 여러 역할을 책임져야 하고, 춤과 노래, 연기를 모두 소화하려다 보면 힘든 부분도 많을 것 같다. 다들 체력을 가장 걱정하더라.
“제게 스포트라이트가 없어도 주어진 연기를 충실히 해내야 하는 점, 다양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야 하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앙상블은 원 캐스트이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매일 최선의 에너지를 쏟아내면서도 체력적으로 지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D. 앙상블 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더라. 실제 무대에 오르는 배우로서 느끼는 인식과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요즘은 앙상블 배우들을 ‘갓상블’이라고 불러주시며 앙상블의 노력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배우들이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불안감 없이 무대에 설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D.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인만큼, 평가도 중요할 것 같다. 어떤 평가를 받고 싶을까?
“역할이 작더라도 기억에 남는 배우”
D.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도 궁금하다.
“킹키부츠의 ‘엔젤’! 가까운 미래에는 제가 꼭 하고 있을 겁니다. 보러와주세요(웃음). 제 목표라면 오래오래 롱런할 수 있는 배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항상 지금처럼 쓰일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시간이 지나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