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N, KBO리그 추후 지급 방식으로 중계권 요구
2009년 중계권 사태 이후 재산권 지켜진 KBO리그
미국 내 독보적 위치를 자랑하는 스포츠 채널 ESPN이 KBO리그 중계 영상을 사실상 무료로 제공해달라고 해 빈축을 사고 있다.
최근 ESPN은 KBO(한국야구위원회)와 KBO리그의 판매권을 갖고 있는 에이클라에 문의를 했다. 미국에서 KBO리그의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미국은 코로나19의 여파로 메이저리그는 물론 모든 스포츠 리그가 중단된 상황이다. 이에 ESPN은 야구팬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주기 위해 KBO리그에 눈을 돌렸고, 1억 명에 달하는 미국 내 시청자들에게 한국 야구가 소개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ESPN은 중계권료를 추후에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일단 미국 내에 KBO리그를 중계하고 이를 통해 벌어들인 광고비의 일부를 지급한다는 방식이었다. 일종의 런닝개런티 개념이다.
21세기 들어 문화 콘텐츠에 대한 저작권 인식이 강화됐고, 이는 거대 산업으로 발전한 스포츠 리그도 마찬가지다.
스포츠의 경우 방송사 또는 에이전시가 중계 판권을 사들여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거나 2차 판매를 하는 형식인데 KBO리그 역시 엄연히 중계권 소유자가 있다.
KBO리그는 지난해 2월 유무선 중계권 사업자 선정 입찰에서 통신 및 포탈 컨소시엄(네이버, 카카오,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과 계약을 맺었고 규모는 5년간 1100억 원이었다.
이어 지난 2월에는 지상파 3사(KBS, MBC, SBS) TV 중계방송권 계약을 맺었다. 액수는 4년 간 총 2160억 원이었다. 따라서 KBO리그의 총 중계권료는 연평균 760억 원에 달하는데, ESPN은 이를 무료로 제공해 달라고 한 셈이다.
사실 KBO리그의 중계권이 TV와 통신, 포탈로 명확히 구분돼 재산권을 보장받게 된 역사는 오래 되지 않는다.
90년대 르네상스 시대를 보냈던 KBO리그는 2000년대 들어 해외 야구와 축구의 인기 급상승으로 잔뜩 움츠려들었다. 이에 방송사들도 KBO리그의 중계를 등한시했고 심지어 2006년에는 이승엽이 몸담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경기를 방송하느라 송진우의 200승 달성 경기가 중계되지 않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야구의 인기가 회복된 2000년대 말, 스포츠 전문 채널들이 등장하고 인터넷, DMB 등이 발전하며 여러 곳으로의 길이 열리자 KBO는 과감하게 에이클라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어 중계권 판매 대행을 맡겼다.
부작용도 있었다. 아무래도 재판매 형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기존보다 높은 액수의 중계권이 요구됐고, 2009년 들어 지상파 3사와 협상 난항을 겪는 중계권 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KBO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KBO는 2011년부터 마케팅 자회사인 KBOP를 통해 중계권을 판매하고 있으며, 지금처럼 지상파 3사가 만든 컨소시엄과 유, 무선 포탈 업체가 계약을 따내고 있다.
특히 지상파 3사 컨소시엄의 경우 TV중계 판매권을 에이클라에 위탁, 자신들의 계열사인 스포츠케이블 방송사에 재판매하고 있다. 이번 ESPN의 무료 중계권 요구에 에이클라 업체의 이름이 등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KBO리그 중계권의 교통 정리가 된지 이제 막 10년이 조금 넘었다. 개막이 되고 나서도 협상이 완료되지 않아 야구를 볼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는 성장통으로 기억될 과거의 일들이다. 연평균 760억 원의 제법 큰 규모로 성장한 중계권을 공짜로 달라는 ESPN의 요구가 그저 황당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