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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림의 그래서] '일하는 국회' 다섯 글자의 함정


입력 2020.06.09 07:00 수정 2020.06.09 04:30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20대 국회는 왜 일할 수 없었나' 살펴봐야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고 국회법상 전반기 국회의장단 선출을 위한 첫 본회의 개회일인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아 의원들이 출신 지역별로 의원석에 앉아 참석한 가운데 본회의가 개회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요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21대 국회를 '일하는 국회'로 만들자는 거다. 이 다섯 글자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돼 있다. 첫째 우리는 정말로 일하고 싶다, 둘째 그런데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셋째 그들을 심판해달라(총선이 끝난 지금도 정신을 못 차렸다), 넷째 177석이 됐으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제치고 가야겠다 등이다. 야당은 "일하기 싫은거냐"는 말에 반박도 어렵다.


조지 W. 부시는 세금 감면(tax cut) 대신 세금 구제(tax relief)를 썼다. 같은 말이지만 구제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느낌을 준다. 단어 안에 선과 악, 좋음과 나쁨, 옳고 그름과 같은 가치판단이 깔려있는 '프레임'이다. 일하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20대 국회 내내 농성, 투쟁, 삭발, 단식을 일삼았으니 '일하는 국회' 프레임에 제대로 걸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왜 20대 국회는 일하지 못했나' 따지고 들어가면 그 책임은 여당이 더 크다. 제1야당을 패싱한 채 이해관계가 맞는 범여 정당끼리 선거의 룰을 바꿔버렸고, 헌법 위반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에도 제대로 된 국회 논의 없이 공수처법을 밀어붙였다. 웅동학원 채용비리, 자녀 대입 비리의혹, 가족펀드 운용관련 의혹 등이 제기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야당의 반대와 국론 분열의 우려에도 임명됐다. 20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가 된 근본적인 이유다.


여당은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밀어붙일 때도 '개혁'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선거제 개혁'과 '검찰 개혁'이다. 법안이 처리됨으로써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불러올 것이란 전제가 깔린 프레임이다. 하지만 금태섭 전 의원은 "어떤 정치학자도 선거법 개정으로 우리의 선거제도가 조금이라도 나아졌다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오히려 "급조되고 선거 후 합당·소멸되는 가짜정당(비례위성정당)이 속출했다"며 "실제로는 엄청난 퇴행이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에 대해서도 "반드시 성공한다고 무슨 근거로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개혁을 붙인다고 개혁이 이뤄지지 않듯이, 일하는 국회를 외친다고 일하는 국회가 되지 않는다. 177석이 된 거대여당이 의석수를 믿고 일방적 독주에 나선다면 21대 국회가 20대 국회와 얼마나 다를까 싶다. 오히려 견제되지 않은 권력 행사로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우려가 크다. 야당도 현명한 프레임 대처법이 필요하다. 예컨데 허은아 통합당 의원은 최근 '일하는 국회법'에 맞서 '함께 일하는 국회법'을 발의해 눈길을 끌었다. '함께'라는 말을 붙였을 뿐인데 '일하는 국회법'보다 훨씬 의미 있게 느껴진다. 함께 일하지 않는 일방적 국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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