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규제 조치 이후 국산화 일부 성과에도 의존도 여전히 높아
스가 총리 취임 후에 기조 변화 없을 듯..."강화되지 않으면 다행"
일본 내각 총리대신이 아베에서 스가로 교체되지만 국내 산업계의 기대감은 크지 않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의 부품소재 수출 규제가 시행된지 1년여가 지났음에도 조치의 완화보다는 규제 지속에 무게가 실려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양국 관계 악화로 인해 추가 규제 조치가 이뤄지면서 수출입 환경이 더욱 악화되지 않을까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아베 내각 시절인 지난해 7월 시작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는 스가 내각에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7월 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한국 대법원에서 일제 강제징용과 관련해 전범기업에 배상판결을 내리자 보복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해당 3개 품목을 한국으로 수출할 때 허가 방식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로 전환한 것으로 이로인해 해당 일본 기업들은 한국으로 수출할 때마다 허가를 받게 됐다. 이어 8월에는 한국을 자국 기업이 수출할 때 승인 절차 간소화 혜택을 인정하는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이러한 수출 규제 조치로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기업들의 우려가 컸지만 이후 해당 소재에 대한 국산화가 조금씩 진척되는 등 전화위복의 결과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1년간 수출규제 3개 품목의 통관 수입실적을 분석한 결과,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대일 수입 의존도가 각각 6%포인트와 33% 포인트 감소했으며 벨기에와 대만 등으로 수입처도 다변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불화수소의 경우, 국산화가 상당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솔브레인과 램테크놀러지 등이 액체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하며 일본 스텔라케미파와 모리타화학의 자리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들도 있는 만큼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규제 대상이 됐던 3대 핵심 소재 중 하나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일본 수입의존도가 90% 이상 유지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이전부터 상당한 국산화가 이뤄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수입 차질은 제한적이라는 게 한국무역협회의 설명이지만 높은 수입 의존도는 분명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또 포토레지스트의 경우에도 반도체 초미세공정에 사용되는 극자외선(EUV·Extreme Ultra Violet)용 제품은 아직도 일본 수입이 대부분으로 국산화까지 최소 5년 정도가 더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도체 노광(웨이퍼에 빛을 쐬어 회로를 새기는) 공정에 사용되는 포토마스크의 원재료인 블랭크마스크도 호야·신에츠 등 일본 기업들이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더구나 EUV용은 호야가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다. EUV 공정을 도입한 삼성전자와 타이완 TSMC 등도 호야의 마스크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나마 국산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불화수소의 경우에도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고 초고순도 불화수소는 여전히 일본 의존도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지난해 백색국가 명단 제외로 수출심사가 크게 강화된 품목인 비민감 전략물자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 기초유분, 플라스틱 제품 등 비민감 전략물자의 대일 수입 의존도는 대부분 80∼90%에 달한다. 지난해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웨이퍼의 대일 수입 비중은 40.7%로 전년도(34.6%) 대비 6.1%포인트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한·일 관계가 더 악화돼 규제가 더욱 강화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양국 정부의 기조상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만큼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없는 상황으로 더 강화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게 업계의 의견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일부 품목에서 국산화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부품·소재에서는 일본 의존도가 워낙 높아서 단번에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국 일본이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한 기술력을 따라 잡는데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