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환 인국공 사장 해임 실상은 '찍어내기'
정부부처 입김만 실린 공운위 공정성 상실
"기획재정부가 사실상 공운위 거수기 취급"
공공기관 평가 전담기구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가 출범 초기 취지를 잃어버리고 정부부처의 거수기 역할을 하는 '권력형'으로 변질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해임 과정에서도 공정성을 뒤로한 채 정부부처(국토교통부) 감싸기에 나서는 모습이 역력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정부 각 산하 공공기관에 공운위는 이미 '절대권력'이 돼버렸다. 그 여파로 각 기관장들이 경영 혁신은 고사하고 임기 내내 대통령과 소속 정부 눈치를 보면서 공공기관 경직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한다.
공운위는 24일 회의를 열어 국토부가 건의한 구본환 인국공 사장 해임안을 속전속결로 의결했다. 구 사장이 직접 반박자료까지 준비하고 공운위에 참석했지만 해임안 통과를 막지 못했다. 해임 대상이 된 기관장이 공운위까지 직접 참석해 소명한 경우는 이례적이다.
구본환 사장은 절차상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며 소송까지 불사할 계획이다. 공공기관장 해임이 신중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국토부와 공운위가 절차상 충분한 검토와 소명 기회도 없이 서두른 건 부당한 처사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공공감사법에 따르면 감사 대상자에게 감사 결과를 통보하고 재심의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국토부는 이 과정을 생략했다. 구 사장은 "절차상 법률 위반 사항이 있어 결론이 무효가 될 여지가 있는 데도 임면권자 재가 절차를 밟는다면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직원 인사 문제와 관련해 "CEO의 인사권·경영권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국토부 주장대로라면 모든 공기업 사장이 해임 대상"이라고 토로했다. 지노위와 중노위가 '부당 인사'를 내린 데 대해선 "노동위는 부당 여부를 노동자 편에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공정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재부 안팎에서도 공운위가 이날 판단을 보류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국토부와 구 사장 주장이 대립되는 데다 사실관계가 미흡할 경우 민간 공운의원들이 법률 적용을 위한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며 최종 판단을 미룰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이 국토부와 구 사장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가운데 공운위가 해임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한 공공기관 고위관계자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르면 해임 대상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고 청문 절차도 밟아야 한다"며 "특히 국토부가 해임 이유로 제기한 '충실의무 위반'의 경우 판단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임에도 회의를 속결한 것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부처 입김만 센 공운위…사실상 기재부 '거수기'로 전락
이러한 공운위 결정에는 외부 영향력이 개입된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구 사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국토부 고위 관계자가 (자신에게) 사퇴를 종용했다"고 거듭 밝혔다. 구 사장에게 자진사퇴를 요구할 수 있을 정도의 국토부 고위관계자는 사실상 김현미 장관과, 구 사장의 행시 합격 동기생인 손명수 제2차관 정도로 압축된다.
이같은 정황을 감안하면 사실상 국토부가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 정규직화 정책 과정에서 촉발된 국민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꼬리자르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6월 구 사장이 협력업체 소속 보안검색요원 1900명을 직접 고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된 이른바 '인국공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정성과 객관성을 생명으로 한 공운위에 정부 권력이 개입되면 치명적인 결과로 번진다. 가뜩이나 정부 눈치를 보는 산하 공공기관에 대해 공운위가 '절대권력'이 되는 동시에 기관의 운영에 경직성을 가속화시킨다.
공운위 역할이 기존 취지에서 권력형으로 변질되면서 공공기관장 입지는 기구한 운명에 놓였다. 취임 전에 하마평에 오르고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정부 정책 기조에 반하는 처신을 하는 순간 자리에서 내쳐지거나 회유나 위협을 받기도 한다.
정부 비위만 맞춘다고 능사가 아니다. 공운위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를 토대로 기관장 해임을 심의할 수 있는 권한도 가졌다. 실제로 공운위는 2015년 부채 감축과 경영 관리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고정식 광물자원공사 사장, 최평락 중부발전 사장, 장기창 시설안전공단 사장 등 기관장 해임을 건의했다.
문제는 경영 성과 심의 시에도 정부 개입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가 공식 발표 1시간여 전에야 공운위에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발표 직전에 평가 결과만 통보받은 탓에 공운위는 법률에 명시된 심의 기능을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했다.
당시 기재부 공운위 회의록에 따르면 개별 공공기관에 대한 경영실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심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민간 공운위원들은 "뭘 의결하는지도 모르고 의결했다. 이럴 거면 공운위가 왜 있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당시 공운위 의사결정에 참여했던 관계자는 "기재부가 공운위 심의를 건너뛴 것은 결과적으로 민간위원들 심의를 건너뛴 것으로 공운위를 거수기 또는 스파이 취급한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공운위는 정부부처 입맛대로 운영되며 객관성과 중립성,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는 눈먼 기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