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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⑦] ‘미나리’ 윤여정 그리고 스티븐 연의 눈물


입력 2020.12.04 15:01 수정 2020.12.04 15:02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미나리'의 주연을 맡은 스티븐 연 ⓒ예고편 화면 갈무리

배우 윤여정이 미국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미국 선셋필름서클어워즈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선셋필름서클어워즈는,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언론인들이 주요 시상식과 영화제를 취재하기 위해 설립한 협회가 주관하는 시상식으로 아카데미어워즈의 향배를 가늠하는 시상식이나 영화제 중 하나로 꼽힌다.


자연스러워서 더 '진짜' 같은 연기, 배우 윤여정 ⓒ예고편 화면 갈무리

지난 2일 수상 소식을 들으며 첫 번째 든 생각은 이런 게 진정한 어른의 역할이라는 것이었다. 살아볼 만하다, 나이들 만하다…고 후세대가 생각하게 해 주는 것. 60대에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더니, 70대가 되어서는 할리우드에서 상을 받는 모습. 늦깎이 주연배우가 되어 80세에도 주연을 하는 배우 나문희와 함께 정말 멋지게 노익장을 보여 주어 감사하다.


기쁨과 축하의 마음으로 판씨네마㈜가 수입·배급하는 영화 ‘미나리’에 대해 찾아봤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연출하고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븐 연과 우리나라 배우 한예리가 주연을 맡았다. 브래드 피트가 제작하고, 스티븐 연이 제작에 참여한 것도 눈길을 끈다. 포털에 줄거리라곤 ‘낯선 미국 남부의 메마른 땅에 희망의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 온 힘을 쏟는 어느 한국인 가족의 따뜻하고 특별한 이야기’가 전부다.


왼쪽부터 정이삭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앞줄엔 어린이배우 앨런 S. 김, 노엘 조 ⓒ출처=블로그 rama0105

예고편, 미국 영화소개 사이트 IMDB 등을 보면 조금은 더 많은 얘기가 짐작된다.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미국으로 간 제이콥(스틴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감별사로 10년을 일한 제이콥은 좀 더 안정적인 정착을 하고 싶어 남부의 시골 아소칸주로 이주한다. 그새 가족이 늘었다. 누나 앤(노엘 조 분)과 남동생 데이빗(앨런 S 김), 딸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온 순자(윤여정 분), 3대가 컨테이너에 산다. 제이콥은 경작을 시도하지만 농사라는 게 쉽지 않고, 아내는 캘리포니아로 돌아가자고 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할 거 아냐!” 의지를 불태우는 제이콥, 그런데 컨테이너가 불타는 모습. 고난의 정착기가 보인다.


눈물뿐 아니라 웃음도 기대된다. 한국에서 온 외할머니 순자와 미국에서 나고 자란 손주 데이빗과의 문화적 충돌, 고스톱 치는 장면 등에서 능청스러우면서 귀여운 윤여정 배우 특유의 넉살 연기가 돋보인다. ‘힐빌리의 노래’의 에이미 애덤스, ‘맹크’의 어맨다 사이프리드,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나인 데이즈’의 재지 비츠 등 연기파 배우들을 제치고 선셋필름서클어워즈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이유가 보인다.


감독의 어린시절이 투영된 데이빗과 아버지 제이콥 ⓒ판씨네마㈜ 제공

예고편에서 눈길이 가는 또 한 사람, 스티븐 연이다.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를 통해 인기를 얻고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한국영화 ‘옥자’ ‘버닝’을 통해서도 국내에 얼굴을 알린 바 있는 배우다. 과거 작에서도 연기가 좋았지만, ‘미나리’에서는 한층 성숙해진 연기를 보여 준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뿌리를 내리려는 의지,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열망이 짧은 예고편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안정감 넘치는 스티븐 연의 연기를 보노라니, 2년 전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만났던 모습이 생각났다. 당시 스티븐 연은 이창동 감독이 연출한 ‘버닝’에 정체가 묘한 재력가 벤으로 출연해 온몸으로 가난과 세상의 벽에 부딪히는 종수를 연기하는 유아인과 팽팽한 심리대결을 펼쳤다. 대결의 중심엔 신예 전종서가 인상적으로 소화한 혜미가 있었다. 벤 연기도 좋았고, ‘워킹 데드’로 형성돼 있던 팬층도 있었고, 한국 관객들은 그를 향해 넘치는 사랑을 표했고, 스티븐 연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감사했다.


영화 '버닝'에서 대립각을 세운 종수와 벤(왼쪽부터) ⓒCGV아트하우스 제공

그런데 일이 터졌다. 칸에서 한창 조명받고 박수받아야 할 시점이었다. 영화 ‘메이햄’의 감독 조 린치가 SNS에 올린 욱일기 디자인의 셔츠를 입은 소년 시절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스티븐 연은 티셔츠 속 욱일기를 자세히 확인하지 않고 한 행동이었다는 점, 욱일기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을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는 점을 밝히며 사과했다. 그것으로 끝이면 좋았으련만 2차 논란이 불거졌다. 영문 사과문의 뉘앙스가 한국어 사과문가 다르다는 이유였다. 영문 사과문에선, 스마트폰에서 무심코 누른 ‘좋아요’ 하나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이라는 게 슬프다는 것이 부각 됐다. 스티븐 연은 재차 사과했다.


당시 칸영화제 취재를 갔다가 이 과정을 논란의 과정을 조금은 가까이서 보게 됐는데,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는 한국 측 영화관계자들의 의견과 “이게 그렇게 큰 논란이 될 일인가”는 미국 에이전시 측 입장에 온도 차가 있었다. 스티븐 연은 에이전시 측 입장 뒤에 숨기보다 자신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영화 '버닝'의 인상적 장면, 잠시 후… 도발! ⓒⓒCGV아트하우스 제공

작은 어촌이었던 칸의 바다를 배경으로 라운드 형식으로 이뤄진 ‘버닝’ 인터뷰에서도 해당 내용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스티븐 연은 아버지와의 통화를 얘기하며 일제강점기와 광복, 욱일기의 의미에 대해 알려주셨다며 “네가 잘못했다”고 한 부친의 말씀을 전했다. 그때 필자가 오지랖을 부렸다. “연 배우가 한국 관객에게 애써 무엇을 잘하지 않았을 때도 먼저 사랑해 주시지 않았느냐. 그것을 기쁘게 받았던 때를 기억하며, 이번 질책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계속해서 연기 잘하고 좋은 모습 보여 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시 큰 사랑을 준다. 한국 사람을 두고 정이 많다고 한다. 많이 사랑하고 크게 섭섭하고, 근데 사과하고 잘해 나가면 외면하지 않는다. 이번에 고국과 고국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때 스티븐 연이 갑자기 아기처럼 울었다. “고맙다”고 말하며 자신의 얘기를 해나가던 참이었는데,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필자가 엄마뻘 나이는 아니지만, 울면서도 자신의 솔직한 속내를 밝히는 스티븐 연의 모습이 순수해 보였고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찡했다. 그 후 필자는 ‘스티븐 연을 울린 기자’가 됐다. 핀잔 섞인 악명에 당시엔 좀 억울한 감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울린 게 맞다. 어쩌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 질문도 아닌 말을 전해 스티븐 연을 울렸다.


스티븐 연, 아카데미에서 웃을까 ⓒ예고편 화면 갈무리

그렇게 아기 같던 뽀얀 사내가 ‘미나리’ 예고편을 보니 아버지가 됐다. 그것도 아주 듬직한 아버지가. 스티븐 연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나리’는 미국 현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로의 이주 경험이 있는 스티븐 연의 어린 시절 경험이 연기로 녹아든 ‘미나리’는 앞서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받았고,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들 10편을 꼽으며 ‘미나리’를 언급했다. 매거진 배니티 페어도 ‘올해 최고의 영화 10편’에 ‘미나리’를 선정했다.


아카데미상 후보에 들면 작품상이나 감독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남우주연상도 가능하다. 영화를 아직 관람하지 못했으니 희망뿐이지만, 스티븐 연에게 트로피가 가기를 응원한다.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과거 외국어영화상)을 차지했을 때 아쉽게도 받지 못한 남우주연상을 한국계 배우가 받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은가. 백인 일색의 아카데미에서 아시아계 배우가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는 역사, 지난해에 이어 새 역사가 써질지 지켜볼 일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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