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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메모리즈⑧] ‘콜’ 전종서, 집요한 의심-잘못된 질문을 거두게 하는 배우


입력 2020.12.09 05:10 수정 2020.12.09 05:1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전종서 ⓒ NEW·넷플릭스 제공

영화 ‘콜’(감독 이충현, 제작 ㈜용필름, 배급 NEW·넷플릭스)이 공개됐다. 20년 전과 현재, 장소는 동일하게 하나의 집, 두 가지 시간대가 유선전화로 연결된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이 연결됐을 때 사랑이 꽃피기도 하고 SF 액션이 탄생하기도 하는데, ‘콜’은 스릴러를 빚어낸다.


넷플릭스를 통해 첫선을 보이다 보니 집에서 혼자 보기가 십상, 예상치 못한 공포에 두 눈을 질끈 감다 못해 ‘이때쯤 아닐까’ 싶으면 단말기를 밀어내는 나를 발견한다. 공개 첫날 영화를 본 지인들과 얘기 나눠 보니 “무서워 혼났다”는 반응이 많다.


희대의 캐릭터 탄생, '콜'의 영숙 ⓒ NEW·넷플릭스 제공

긴장을 몰아가는 이충현 감독의 연출, 촬영기법과 음향 등의 효과, 세트 등 미술디자인도 함께 긴장감을 일궜다. 그래도 일등공신은 20년 전에서 현재까지의 영숙을 연기한 ‘배우 전종서’이다. ‘콜’이 주는 스릴, 영화가 안기는 공포의 가장 큰 요소는 영숙이 그 자체다. 다른 배우가 연기해도 같은 결과였을까,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전종서는 한 마리 살아 날뛰는 들짐승처럼, 억압당하다 폭발해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 배신감 그 자체를 우리 눈앞에 보여준다.


‘콜’을 보며 2년 전, 영화 ‘버닝’(감독 이창동, 제작 파인하우스 필름·나우필름, 배급 CGV 아트하우스)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을 때, 칸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전종서에게 던졌던 질문을 반성했다.


당시를 회상해 보면, ‘버닝’을 봤는데 너무 좋았다. 이창동 감독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처럼 영화가 푸릇해진 게 놀라웠고(단순히 청춘을 다뤄서가 아니다. 젊은이들의 시대적 좌절감에서 분노를 읽고 그것을 심리 스릴러로 풀어냈는데, 마치 청춘의 화법으로 청춘을 말하듯 불안과 좌절을 툭툭 던져 놓더니 어느새 그게 이불 쌓이듯 척척 쌓이다가 필연적으로 폭발했다. 흡사 자비에 돌란 감독이 서른 안팎에 연출했다고 해도 믿길 만큼 영화를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했다), 배우 유아인이 기존의 현란한 팝아트 같은 연기를 내려놓고 여백의 미가 있는 한국화처럼 표현하며 진화를 보여줘서 반가웠고,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걸어나와 한국영화에 새로운 유형의 배우가 등장했음을 알린 스티븐 연의 뭔가 거슬리면서도 뭔가 멋이 나는 연기도 좋았다. 그리고 전종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띵’했다.


‘띵’의 실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연기를 너무 잘해서, 날 것처럼 연기해서 인상적인 건 분명한데 너무 잘하니까 되레 의문이 생겼다. 기존에 봤던 배우라면 그 결에 비추어 큰 박수를 보냈을 것이고, 신인의 테가 묻어나면서도 잘했다면 그 또한 미래 가능성을 내다보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 잘하니까, ‘버닝’의 혜미가 전종서인지 전종서가 혜미인지 헷갈리니까, 이것이 연기력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청춘의 자화상 그 인상적 등장, '버닝'의 혜미ⓒCGV 아트하우스 제공

여기저기 취재를 해 보니, 혜미 역을 놓고 숱한 오디션이 이어졌고 이창동 감독과 제작진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우는 없었다. 한 연예기획사 대표도 오디션에 소속 배우를 참가시켰지만, 캐스팅되지 않았다. 혜미를 연기할 배우가 없어 난항을 거듭하던 중에 그 대표는 영화 제작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소속 배우가 참여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버닝’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감명 깊게 읽었던 대표는 혜미 역의 배우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때 거짓말처럼 인연이 닿았던 게 전종서였고, ‘혜미다!’라는 느낌이 왔단다. 오랫동안 자신의 성향이나 지향과 맞는 소속사를 찾던 전종서도 둥지를 틀었고, 대표의 노력으로 ‘버닝’ 오디션 자리가 마련됐다. 이창동 감독과 제작진 또한 전종서에게서 혜미를 보았다. 혜미 역의 배우까지 캐스팅을 마무리한 ‘버닝’은 촬영이 시작됐다고.


캐스팅 스토리를 듣자 의문이 더욱 커졌다. 혜미 역에 최적이어서 캐스팅되고 놀라운 연기를 펼친 걸까, 놀라운 연기력을 지녀 혜미 역에 캐스팅된 걸까. 일단, 머리를 떠나지 않는 질문을 불러일으켰다는 것만으로도 전종서의 혜미 연기가 얼마나 인상적인지는 확실했다. 드디어 칸의 바다를 등지고 전종서를 인터뷰 테이블에서 만났다. 첫 번째 질문에는 혜미라는 인물이 전종서에게서 나왔는지, 이창동 감독의 디렉션 결과인지를 알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혜미라는 인물의 탄생과정, 레시피를 물었다. 전종서는 답했다.


“조율은 없었어요. 현장에 던져져 반응했어요. 연기적 디렉션은 많지 않았습니다. 캐릭터와 영화에 대해 정확하게 말씀해 주신 적 없고, 촬영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다가갔어요.”


'버닝' 촬영현장. 오른쪽부터 감독 이창동과 배우 전종서 ⓒCGV 아트하우스

혹자는 ‘아, 전종서의 힘이 크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같은 대답을 듣고도 필자는 확신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왜냐하면, “감독은 신이 아니다. 열어 놓고 기다리다 포착한다”라는 이창동 감독의 말을 곱씹어 보면, 배우의 역할이 큰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결국 포착해 내는 건 감독의 몫이다. 현장에 던져 놓고 반응을 포착하는 방식, 정확하게 짚어 연기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 자체가 디렉팅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기생충’ 속 박 사장(이선균 분)의 아들 다솜을 연기한 어린이배우 정현준을 두고도 봉준호 감독은 “현준 군 그대로 다솜이라, 나는 그저 숨죽이고 기다리며 자유로이 움직이게 두고 카메라에 잘 담아내기만 하면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 끝에 전종서에게 물었다. 바로 이 대목이 반성의 지점이다. 혜미는 충격적이었어요, 보기 드문 에너지예요. 신인인데 유아인과 스티븐 연 사이에서 밀리기는커녕 정말 대단해요. 그런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전종서를 보여준 것인지, 혜미를 연기한 것인지. 다음 작품을 보면 알게 될 것 같아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어떤가요. 관객들에게 계속해서 배우로서의 전종서를 각인시킬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제가 좋아하는 건 놓치지 않아요. 연기를 하는 건 연기를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이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계속해서 하겠지만, 누구에게나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제와 오늘이, 또 내일이 다른 사람이에요. 그 모습이 필름에 담기는 거잖아요. 그때의 내 모습이 필름에 담기는 거예요. 저는 연기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고,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끈을 놓지 않고 사람에 관해 관심을 지니고 소통하고 살다 보면, 그리고 그걸 보여 드리는 게 연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답변을 들었을 때도 반성했다. 연기를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를 얼마나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라는 것, 사람에 관해 관심을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기에 캐릭터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고, 앞으로 그것을 보여주겠다, 그것이 연기라고 한다면 혜미는 연기였다고 힘주어 말한 것이다.


전종서 "나는 배우다" ⓒNEW·넷플릭스 제공

그리고 이번에, ‘콜’을 통해서 배우 전종서는 다시금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의 답변을 믿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이번엔 말이 아니라 실행으로 자신을 입증했다. 먼저 ‘버닝’에 이어 또 한 번의 ‘광기 어린’ 연기력을 과시했다. 전종서인지 혜미인지 헷갈릴 만큼의 광기, 당장이라도 20년의 시간쯤은 뛰어넘어 전화기 속에서 튀어나와 나를 해할 것 같은 광기, ‘광기’라는 말 외에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에너지 넘치는 연기, 온몸에서 발산하는 캐릭터, 짜릿하다.


그리고 ‘미친’ 연기력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종서의 몸을 빌려 태어날 다음 캐릭터를 기다리게 하는 힘, 배우로서의 다양한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우리끼리 보기 아까운 연기력, 세계인이 즐길 그 날을 기다린다. 그 첫발은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 ‘더 배드 비치’를 연출한 애나 릴리 아미푸르 감독의 신작 ‘모나 리자 앤 더 블러드문’(Mona Lisa and the Blood Moon)이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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