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대출 연체 3000억 육박…올해만 500억↑
만기 연장·상환 유예에도 여신 상태 악화 가시화
국내 지방은행들이 제조업체에 내준 대출 가운데 제 때 상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금액이 올해 들어서만 500억원 넘게 불어나며 3000억원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에 제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 여파가 지방은행으로도 옮겨가는 모습이다. 특히 은행들이 코로나19 금융지원 정책을 통해 경영난에 빠진 기업 차주들의 대출 상환을 미뤄주고 있음에도 부실 조짐이 가시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BNK부산·BNK경남·DGB대구·광주·전북은행 등 5개 지방은행들이 보유한 제조업 대출 중 1개월 이상 상환이 연체되고 있는 금액은 총 2922억원으로 지난해 말(2421억원)보다 20.7%(501억원)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지방은행들의 제조업 연계 여신 건전성이 나빠진 배경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충격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무역 환경 악화로 수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이에 의존도가 큰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빚을 갚는데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철강·자동차·조선 등 중후장대 업종이 몰려 있는 경남 지역과 금속·기계장비 생산 업체가 많은 대구·경북 지역에 기반을 둔 지방은행들의 제조업 대출 연체가 집중적으로 늘어난 흐름은 이런 현실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경남은행에서 발생한 제조업 대출 연체가 조사 대상 기간 861억원에서 1083억원으로 25.8%(222억원) 증가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이어 대구은행의 제조업 대출 연체액 역시 941억원에서 1062억원으로 12.9%(121억원) 늘면서 1000억원을 넘어섰다. 부산은행의 해당 금액도 42.7%(138억원)나 증가했다. 이밖에 광주은행은 151억원에서 167억원으로, 전북은행은 145억원에서 149억원으로 각각 10.6%(16억원)와 2.8%(4억원)씩 제조업 대출 연체가 늘었다.
이 같은 지방은행을 둘러싼 제조업 대출의 질 악화에 더욱 염려스러운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금융지원의 효과마저 무너진 결과라는데 있다. 코로나19 이후 과도한 대출 연체를 막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지방은행의 제조업 여신에서 만큼은 상황이 악화되고 있어서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금융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은행들에게 적극적인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주문했다. 코로나19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기업과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에 지방은행들도 올해 상반기부터 관련 조치를 적극 시행해 오고 있다.
이런 금융지원 정책은 대출 연체액을 줄여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요소다. 만기나 이자 상환 시점을 연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즉시 연체로 잡힐 수 있었던 대출이 잠시나마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돼서다. 이에 코로나19 악재에도 불구하고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연체 대출 규모는 올해 3분기 말 2조5200억원으로 지난해 말(2조5011억원)보다 다소(0.8%·189억원) 감소했다.
몸집을 불리고 있는 대출 연체는 벌써부터 지방은행들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여신 건전성 관리를 위한 충당금 비용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충당금은 금융사가 고객들에게 빌려준 돈의 일부가 회수되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수익에서 일부 제하는 금액을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충당금이 늘어난 만큼 은행의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5대 지방은행들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쌓은 충당금 전입액은 4681억원으로 전년 동기(3486억원) 대비 34.3%(1195억원)나 늘었다. 이로 인해 이들이 거둔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9904억원에서 8377억원으로 15.4%(1527억원) 감소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대목은 코로나19를 딛고 수출이 회복세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3분기 수출은 전기 대비 16.0% 늘며 1986년 1분기(18.4%) 이후 가장 큰 증가폭을 나타냈다. 수출 추이에 영향을 크게 받는 국내 제조업의 특성 상 최근의 이런 흐름은 긍정적인 시그널로 읽힌다. 다만,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만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역 거점 산업을 영업 기반으로 삼고 있는 지방은행의 구조를 감안하면, 수출 제조업체의 경영 여건은 은행 여신 전반의 건전성을 좌주할 수 있는 요소"라며 "올해 하반기부터 수출이 반등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불안이 여전한 측면을 고려해 좀 더 능동적인 리스크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