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보선 패배·야권재편 주도권 상실 우려
'기호 2번 안철수' 마지노선 삼아 배수진 친듯
야권재편 이해 엇갈리는 무소속은 "몽니" 비판
안철수 속내, 불협화음 여부 결정할 관건될 듯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야권 후보 단일화를 앞두고 '기호 4번 제3지대 후보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기호 4번이 반문(반문재인) 유권자의 힘을 결집하는 방안'이라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이의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여기에 재보선 이후 야권재편을 둘러싼 나름의 노림수들까지 얽히면서 향후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불협화음'은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야권재편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릴 무소속 인사들은 김 위원장의 태도를 "몽니"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이 보궐선거 패배 가능성과 향후 야권재편 과정에서 펼쳐질 혼란을 우려해 '소신'을 갖고 펼친 배수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종인 위원장은 2일 비상대책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3지대 후보로 단일화돼서는 시장 선거를 이길 수가 없다"며 "과연 (기호) 4번을 가지고 선거를 이긴다고 확신할 수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반대로 안철수 대표는 이날 CBS라디오 '뉴스업'과의 전화 연결에서 "이번 선거는 야권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기호 4번은) 국민의힘 지지자 분들과 민주당은 싫지만 아직 국민의힘을 선택하지 못하는 분들 양쪽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우회적으로 김 위원장의 발언에 반박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김종인 위원장이 국민의힘 후보로 단일화를 해내지 못하면, 최소한 안철수 대표를 '기호 2번' 즉 국민의힘 후보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배수진을 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단일화의 성공 사례로 꼽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의 '기호 10번 박원순' 사례는 운동권·시민단체 출신으로 민주당원들과 정치적 거리감이 전혀 없었던 경우"라며 "오히려 이번 경우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가 기호 8번을 달고 나가서 졌던 2010년 지방선거 사례와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재보선 뒤 야권재편서 이득 얻을 무소속 인사
분분히 안철수에 가세…"김종인측 몽니" 일갈
야권 '주도권 싸움'으로 바뀌면 협상 더 난항
"서로 어떤 판 보는지 뻔히 아는데 끌려가냐"
김 위원장의 '배수진'의 배경에는 재보선 이후 야권재편 과정에서 국민의힘이 주도권을 잃는 것에 대한 우려도 담겼다는 분석이다. 지금은 102석 국민의힘과 3석 국민의당 사이의 정치적 역학의 우열이 분명하지만, 국민의힘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면 재보선 이후 야권재편의 '객체'로 전락한다는 염려다.
실제로 재보선 이후 야권재편이 펼쳐지면 이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무소속 인사들이 앞다퉈 안철수 대표의 편을 들고 있다.
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이날 "기호나 순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후보"라며 "만약 순서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정의당이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으니 2번이든 4번이든 야권단일후보가 두 번째 칸에 올라가는 것은 기정사실이라 불리할 게 전혀 없다"고 안 대표의 입장에 가세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전날 "서울시민들은 야당 승리를 원하지, 굳이 야당 중 어느 당이 승리하는지는 관심이 없다"며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측의 극히 일부 사람들이 몽니를 부리고 있지만 대세는 거역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렇게 되면 재보선 이후의 야권재편 과정에서의 '주도권 싸움'으로 사안의 성격이 바뀐다. 국민의힘 내에서 현재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인사들이 이를 의식하게 되면 안 대표와의 향후 협상 과정이 오히려 딱딱하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선거 이후의 상황이 너무나 뻔하게 그려지고 있다. 홍준표·윤상현 무소속 의원은 야권재편 판을 보고 있는 게 아니냐"며 "서로 간에 어떤 판을 보고 있는지를 뻔하게 다 아는데 (김종인 위원장이) '어어어' 하면서 그냥 끌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라고 일축했다.
김종인, 안철수 2017년 대선후보 될 때 택했던
완전국민경선 '오픈 프라이머리' 꺼내들 수도
安 본인 예찬했던 방식이나 지금은 수용 못해
김철근 "조직 없다는 것 자인하는 꼴 될 수도"
정치권 관계자들은 오는 4일 국민의힘 후보 선출 이후 본격적으로 단일화 협상이 시작되면, 안철수 대표가 '기호 2번' 수용에 난색을 표할 경우 김종인 위원장이 '오픈 프라이머리' 및 '기호·당명 명시 설문' 카드 등을 테이블 위에 차례로 올리며 안 대표를 압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 참여하고자 하는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든 신분증만 가지고 투표장에 찾아가면 현장에서 경선 투표를 할 수 있는 방식을 말한다. 안철수 대표 본인이 예찬했던 방식이기도 하며, 2017년 3~4월 옛 국민의당이 이 방식으로 대선후보 경선을 실시해 호남에서만 10만 명 가까운 유권자가 참여하는 등 흥행몰이를 한 끝에 안 대표가 선출되기도 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전략실장이 이날 KBS라디오 '최강시사'에서 "꼭 여론조사라는 단일화 방식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며 "야권의 승리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럼을 짜고 더 많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단일화 과정이 되게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방식은 안철수 대표가 2017년과는 달리 지금은 수용할 수가 없다. '오픈 프라이머리'의 승패는 조직력이 관건인데, 2017년 옛 국민의당 대선후보 경선 때 경쟁 상대인 손학규·박주선 예비후보를 상대로 조직력에서 앞섰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서울에서 국민의힘에 비해 현격히 조직력에서 열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직이 없어서 수용 못한다'는 것도 어폐가 있다. 김철근 국민의힘 서울 강서병 당협위원장은 "그렇게 오픈 프라이머리를 좋은 제도라고 해놓고 지금 수용을 못하겠다는 것은 조직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아니냐"며 "본선에서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조직이 없다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가용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서 치르는 게 선거"라고 평가했다.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도 이날 MBC라디오 '시선집중'에서 "보궐선거니까 아무래도 조직전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큰 기성정당의 조직이 가동되는 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며 "우리 (국민의당)는 상대적으로 기성 양당보다 조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시인했다.
단일화 협상, 여론조사 방식으로 넘어간다면
'기호·당명 명시 설문' 두 번째 카드로 거론
이태규 "설문에 당명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서 4번으로 본선 이긴다? 이율배반"
'오픈 프라이머리' 제안을 쳐낸다면 선택지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방법인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로 압축된다. 여기서 김 위원장이 꺼낼 카드는 '기호·당명 명시 설문' 카드로 관측된다.
김철근 위원장은 "본선에서 '기호 4번'으로 나가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단일화 여론조사를 할 때부터 '기호 2번 국민의힘 ○○○, 기호 4번 국민의당 안철수 중에 누가 더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기호·당명 명시 설문'에도 동의해야 한다"며 "그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기호 4번'으로도 본선에서 이긴다고 자신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태규 사무총장은 "서울시장 후보가 되겠다는 후보들이라면 앞에 수식어가 필요가 없고 이름 석 자만으로 시민들이 판단할 정도가 돼야 한다"며 "굳이 (설문에) 당명이라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호·당명 명시 설문'에 벌써부터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 김철근 위원장은 "당명 쓰고 기호까지 붙여서 여론조사를 하면 단일화에서 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기호 4번'으로는 여론조사 경선 문턱도 넘기 힘들다고 한다면, 어떻게 본선을 기호 4번으로 이긴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고 우려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이날 비공개 비대위원회의 중에 "안철수 대표가 단일화의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성토한 것은 이같은 향후 협상 과정을 '시뮬레이션' 한 끝에 나온 말로 보인다는 게 국민의힘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종인 '배수진'에 안철수 '속내'가 향후 관건
국민의힘, 안철수 '정치적 결단' 기대 안 접어
성일종 "어느 쪽 조직 잘 준비됐는지 고민해야
안철수, 충분히 '결단' 내릴 그릇이 되는 분"
정치 협상은 어느 한 쪽이 양보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고, 다른 한 쪽이 밀어붙일 때 외견상으로는 가장 순조롭게 타결된다. 얼마전 안 대표와 금태섭 무소속 전 의원 간의 협상이 대표 사례다. 당시 금 전 의원 측은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양보할 준비가 돼 있었고, 안 대표 측에서도 밀어붙였기 때문에 협상이 아주 큰 난항은 겪지 않았다.
하지만 4일 이후부터 펼쳐질 야권 후보 단일화의 최종 국면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안철수 대표가) 금태섭 전 의원과는 워낙 체급 차이가 있으니 밀어붙여서 했을 것"이라면서도 "국민의힘과의 협상도 그런 식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코 다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단순 '몽니'라면 향후 단일화 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국민의힘 물밑의 반발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안철수 대표가 원하는 방향으로 급전개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보궐선거 패배 가능성과 향후 야권재편 과정에서의 주도권 상실 등을 고려한 '소신'이며 이 부분에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공은 안철수 대표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안 대표가 내심 '기호 2번'을 양보할 수 있는 문제로 분류하고 있다면 의외로 '순조로운 협상'을 거쳐 '아름다운 단일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하면 보름간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둘러싸고서는 불협화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면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경직된 '배수진'에도 어떻든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안 대표가 단일 후보로 선출된다면 '기호 2번'을 전격 수용하는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에도 기대를 접지 않는 분위기다.
성일종 비상대책위원은 이날 MBC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안철수 후보가 만약 (야권단일)후보가 된다고 하면 어느 쪽에 의원과 (선거)운동을 뛰어줄 조직이 잘 준비돼 있느냐에 대한 것을 현실적으로 고민할 것"이라며 "나는 충분히 (안 대표가 '기호 2번'이라는 결단을 내릴) 그런 그릇이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