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국 등 경기침체 계기로 규제에서 완화로 선회
코로나 속 면세점 규제 대폭 완화한 중국, 반년 만에 세계 1위로 껑충
“오프라인 유통업체 규제를 강화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왜 유독 우리 나라만 유통업계에 대한 규제가 계속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국내 유통업계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작년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위기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다수의 선진국들은 유통규제를 완화하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대형마트, 백화점 등 기존 대형 유통업체에는 물론 복합쇼핑몰 같은 새로운 업태에도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며 규제 강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22일 진행된 제2차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 올라온 총 26개 안건 중 절반인 13개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었다.
복합쇼핑몰에 대한 영업제한과 대규모 점포 허가제 도입, 전통산업보존구역 범위 확대 등 대부분 대형 유통업체의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작년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전체 유통산업 중 절반 이상을 온라인 쇼핑이 차지할 정도로 유통업계 안팎의 환경이 바뀌었지만 규제 대상은 10년째 오프라인 유통업체에 고정돼 있다.
대형마트는 물론 백화점, 면세점 등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들도 적자를 기록하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규제 일변도 정책에는 변함이 없는 상황이다.
규제 완화하는 프랑스, 도심 내 출점 장려하는 영국
반면 해외에서는 유통규제를 적극적으로 완화하는 등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작년 12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유통규제 글로벌 비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는 소매점포 허가기준을 기존 300㎡에서 1000㎡ 이상 점포로 완화했다. 일요일 영업제한도 기존 연간 5일에서 12일로 확대하고, 국제관광지구나 주요 역 내부 상점은 일요일 영업이 제한에서 제외시켰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면세점도 대형마트와 동일한 의무휴업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국내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핵심 상권에 대형 유통업체 신설을 제한하는 국내와 달리 영국은 오히려 도심 내 출점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도심 내 출점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도심 공동화를 방지하기 위해 도심 외 지역에 2500㎡ 이상 규모의 점포를 설립할 경우 도심 내 지역에 설립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또한 도심 외에 짓는 경우에도 도심 경계에 최대한 인접해 짓거나 도심에서 접근이 유리한 교통요지에 짓도록 하고 있다.
독일은 지자체별로 일정 규모 이상 점포를 대상으로 출점 규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국내에 비해 기준이 명확해 출점 이후 논란이 될 가능성이 적은 편이다. 베를린·헤센주 등 주요 지자체들은 주변상권 영향 분석을 통해 주변상권 매출이 10% 내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면 출점을 허용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신규 출점 시 지역상생협력계획서를 통해 주변 상가나 상인들과 합의가 선행되지 않으면 출점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본은 1974년 이후 우리나라 유통산업발전법과 비슷한 대규모점포법을 통해 영업시간과 휴업일수를 규제했지만, 2000년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대규모점포입지법을 시행하고 현재는 특별한 진입 제한이나 영업시간 규제가 없다. 미국도 별도의 출점이나 영업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중국 면세점,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4위에서 1위로 수직 상승
중국 면세점은 규제완화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작년 코로나19로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면세점 업종은 전 세계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국내의 경우 전년 대비 매출액이 37.6% 하락했고 주요 업체들도 적자를 면치 못했다. 최근 5년간 매년 두 자릿 수 성장을 거듭했던 것을 감안하면 작년은 최악의 해였던 셈이다.
하지만 중국 면세점 기업 CDFG(China Duty Free Group)는 작년 상반기 매출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2019년 말까지만 해도 세계 4위 수준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반 년 만에 세계 1위로 순위가 수직상승 했다.
같은 기간 세계 2위 롯데면세점과 3위 신라면세점은 각각 3위와 5위로 내려앉았다. 세계 면세산업 1위 타이틀도 조만간 중국에 뺏길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내 대표 관광지인 하이난섬 면세점과 베이징 등 시내 면세점을 중심으로 내국인 면세 한도와 규제를 대폭 완화한 점이 주효했다.
전 세계 면세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이 규제 완화 카드만으로 순위를 대폭 끌어올린 것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임대료 인하나 내수 판매 등 정부 조치가 이뤄졌지만 한 발 더 빨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면서 “현재도 전폭적인 지원이라기보다는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