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패 구조적·근본적 청산 위한 동력"
"과거 정부 탓" 비판 거세지자 '톤 다운' 한 듯
4월 재보선 9일 앞두고 민심 회복 의도로 해석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투기 등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의지를 피력하면서, '부동산 적폐' 대신 '부동산 부패'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간 문 대통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신도시 땅 투기 의혹과 같은 부동산 문제가 전 정권부터 누적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적폐' 프레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또 과거 정부 탓이냐"는 비판을 받은데다, 4월 재보궐선거를 9일 앞두고도 민심 회복 기미가 보이질 않자 분위기 반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는 국민들의 내 집 마련의 소박한 꿈과 공평한 기회라는 기본적인 요구를 짓밟았다.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국민의 기대도 무너뜨렸다"며 "국민들의 분노는 드러난 공직자들의 투기행위를 넘어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 갈수록 커지는 자산 격차, 멀어지는 내 집 마련의 꿈, 부동산으로 나뉘는 인생과 새로운 신분 사회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손대지 못했다"며 "이제 우리는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철저하고 단호하게 처리하는 한편 부동산 부패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야단맞을 것은 맞으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동산 부패의 근본적인 청산을 위한 동력으로 삼아 주기 바란다"며 "도시 개발 과정에서 있었던 공직자와 기획부동산 등의 투기 행태에 대해, 소속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엄정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국가의 행정력과 수사력을 총동원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강경 메시지'는 LH 사태로 현 정권을 향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재보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에 열세를 보이는 점, '정권 안정론' 보다 '정권 심판론'에 공감하는 응답자가 더 많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22~26일 전국 성인남녀 25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이날 발표한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4.4%였다. 부정평가는 62.5%로 취임 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39.0%)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28.3%)보다 높았으며, 보궐선거가 열리는 서울과 부산에서 국민의힘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본오차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중도층을 중심으로 '적폐' 표현에 대한 거부감도 드러나면서, 문 대통령이 표현 자체를 '톤 다운'한 것으로도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 적폐' 표현 대신 '누적된 관행'으로 표현을 바꾼 바 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오랫동안 누적된 관행과 부를 축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청산하고 개혁하는 일인 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전셋값 인상' 김상조 경질도 민심 악화 고려
문 대통령이 '전셋값 인상' 논란을 빚은 김상조 정책실장을 불과 반나절 만에 경질한 것도 이러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김 실장이 부동산 가격 폭등, 백신 확보 논란 등으로 사의를 표명했을 때 이를 반려하고 재신임해 왔다. 그간의 인사 스타일로 봤을 때도 이번 경질은 의외라는 평가다. 김 실장 본인도 퇴임 인사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이 엄중한 시점에 국민들께 크나큰 실망을 드리게 된 점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이날 국민을 향해 "오만과 무감각이 국민께 상처를 드렸다"며 자세를 낮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종민 최고위원은 "집값을 잡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진심으로 죄송하며, 민주당과 문 대통령을 믿고 따랐다가 손해 봤다고 한 국민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국민들께 사과한다"고 했고, 양향자 최고위원도 "우리가 잘못한 부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용서도 구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