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C, 특허권 침해 여부 예비판정서 SK 손 들어줘
SK "기술 독자성 인정 받아" LG "특허 침해 입증할 것"
바이든 거부권 열흘 앞으로…배터리 소송 새 국면 '관심'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과이 미국에서 벌이는 배터리 분쟁 '2라운드'에서 SK이노베이션이 승기를 잡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배터리 소송 1라운드(영업비밀 침해)에서 LG의 손을 들어준 반면 2라운드(특허 침해)에선 SK의 편을 들었다.
영업비밀 침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을 기다리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이번 특허 침해 판결로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반면 자사에 유리한 결과를 기대했던 LG에너지솔루션은 한 발 물러나 침해 여부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美 ITC, 배터리 2라운드서 SK 손들어줘…"특허 침해 안했다"
미국 ITC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LG에너지솔루션이 제기한 배터리 분리막 등 특허침해와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이 관련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는 예비 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렸다.
예비결정은 특허권이나 영업비밀 침해 사건을 조사한 ITC 행정판사가 내리는 예비적 판단이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9월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분리막 관련 미국 특허 3건, 양극재 미국특허 1건 등 4건을 침해했다며 ITC에 관련 조치를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코팅 분리막 관련 특허 3건(SRS 517, SRS 241, SRS 152 특허), 양극재 관련 특허 1건(877 특허)이다.
그러면서 해당 특허를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미국 내 수입을 전면 금지해달라고 ITC에 요청했다.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ITC는 517 특허에 대해서는 유효·비침해 판단을, 241에 대해서는 무효·비침해 판단을, 152에 대해서는 무효·침해 판단을, 877에 대해서는 무효·침해(단 특정 청구항 18항은 유효) 판단을 내렸다. 결론적으로 ITC는 LG에너지솔루션이 주장하는 코팅 분리막·양극재 관련 특허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특허 침해 소송은 본 사건 격인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파생됐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2019년 4월 SK이노베이션이 핵심 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자사 인력을 빼갔다며 ITC에 제소했다.
그러자 SK는 2019년 9월 자사의 배터리 특허권을 LG가 침해했다며 ITC에 제재를 요청했고 LG는 같은 달 맞소송으로 응전했다. 시점상 LG 측이 제기한 특허침해 사건이 가장 늦지만 SK 측이 제기한 특허 침해 사건 조사 절차가 지연되면서 LG 측이 제소한 사건의 예비결정이 먼저 나오게 됐다.
2라운드 희비교차…SK "기술 독자성 인정 받아" LG "특허 침해 입증할 것"
이번 예비판정 결과로 양사의 희비가 교차했다. 처음 제소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완승'을 거둔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특허권 침해 소송 결과 역시 자사에 유리하게 나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LG에너지솔루션은 예비결정의 상세 내용을 파악해 남아 있는 소송절차에 따라 특허침해 및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분리막 코팅 관련 SRS®특허의 경우 핵심특허인 517 특허가 유효성을 인정받은 만큼 침해를 입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또 침해는 인정됐으나 무효로 판단받은 SRS®152특허 및 양극재 특허에 대해서도 유효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양극재 특허의 경우 특정 청구항(18항)에서는 유효성과 침해가 모두 인정돼 이에 대해 적극 소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소송은 공개된 특허에 대한 침해 및 유효성 여부에 관한 것으로, 공개된 특허와 달리 독립되고 차별화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면서 비밀로 보호되는 영업비밀 침해와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ITC의 판결에 대해 즉각 환영 입장을 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오랜 기간 자체적으로 우수한 배터리기술을 개발한 바, ITC가 비침해 결정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 "이번 예비결정은 SK이노베이션의 독자적인 기술력을 인정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이) 동일한 미국 특허(517 특허)를 근거로 소송을 또 다시 제기하면서 경쟁사 견제를 위한 발목잡기 식의 과도한 소송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이번 ITC 예비 결정은 이런 비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이 이번 결정에 불복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하게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특허 침해 소송은 8월 2일 (현지시간) ITC 위원회의 최종 결정(Final Determination) 으로 확정될 예정이다.
'3조 vs 1조'…합의금 격차 극복하고 소송 불확실성 걷어낼까
업계는 패색이 짙었던 SK이노베이션이 2라운드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가 재개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1라운드격인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 이후 업계는 양사가 합의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속도는 좀처럼 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합의금이다.
업계 의견 등을 종합하면 LG측이 원하는 배상액은 3조원 이상인 반면 SK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1조원 안팎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ITC는 2월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최종 판결하며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및 관련 부품·소재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 금지를 명령했다. 다만 미국 고객사들의 피해를 고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가 LG의 기술을 탈취했으니 그에 상응하는 합의금액을 제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SK는 침해됐다는 영업비밀이 무엇인지, 어떻게 침해됐다는 것인지에 대해 ITC가 판단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수 조원 규모의 합의금을 내라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고 반박한다.
양사의 배터리 분쟁이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자 한국·미국 정치권까지 가세해 '대승적 합의'를 요청하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지난달 말 미국 조지아주 의회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에 대해 양사 합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최종 채택했다. 전기차 배터리 생산과 공급망에서 미국의 경쟁력과 일자리 보존을 위해 현지 공장의 폐쇄만큼은 막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LG-SK 배터리 최대 수요처 중 하나인 폭스바겐그룹은 최근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다. 업계는 폭스바겐이 LG-SK 소송이 불거질 당시 ITC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지만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LG-SK 물량을 줄이는 대신 내재화 계획을 앞당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폭스바겐처럼 K배터리의 법적 분쟁에 부담을 느낀 완성차들이 다른 제조사들과 협업을 추진하거나 안정적인 물량 조달을 위해 K배터리 물량을 차차 축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LG-SK 소송' 해결이 K배터리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합의 과정에서 진통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대규모 투자 등 시장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다 양국 정치권에서도 판결 영향을 주목하는 만큼 끝내 합의를 도모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ITC 판결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 결정 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LG와 SK가 극적 합의로 경영 정상화를 시도할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