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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이슈] 오스카 손에 쥔 윤여정의 찬란한 55년 여정


입력 2021.04.26 11:17 수정 2021.04.26 11:22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한국 최초

2009년 11월 서울 청담동 한 레스토랑에 여섯명의 여배우가 모였었다. 이미숙, 고현정, 최지우, 김민희, 김옥빈 그리고 윤여정. 영화 ‘여배우들’인터뷰 때문이다. 이들은 각각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기자들은 인터뷰를 신청한대로 시간에 맞춰 약 40여 분간 돌아가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시 가장 관심을 끈 인물은 고현정이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방영할 때라, 미실 역의 고현정은 영화와 드라마 모든 것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화제성을 잠시 빼면, ‘이렇게 인터뷰하니 힘들다’라고 후배들에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쿨하고 유쾌하게 조용히 전하는 윤여정이 단연 빛났다. 돌아보면 윤여정은 그때도, 그 이후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이 26일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배우 최초다.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마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글렌 클로즈, ‘더 파더’올리비아 콜맨, ‘맹크’아만다 사이프리드를 제치고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것이다.


윤여정은 이제 한국 후배 배우들과 대중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만한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1947년생으로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은 1971년 MBC ‘장희빈’에서 악녀 장희빈 역을 맡았다. 그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화녀’(1971)로 스크린 데뷔해 스타덤에 올랐다. 이 작품으로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0회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또 스페인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2010년에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다시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 출연해 제18회 춘사영화상, 제19회 부일영화상, 제47회 대종상, 제31회 청룡영화상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전성기였던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배우 생활을 잠시 접고,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결혼 13년 후인 1985년 조영남과 이혼한 뒤 두 아들의 양육을 위해 연예계에 복귀, 박철수 감독의 영화 ‘에미’로 다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90년대 드라마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2000년대 ‘넝쿨째 굴러온 당신’, ‘디어 마이 프렌즈’등 작품에서 열연했다. 반드시 주연만 한 것도 아니다.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면서도 묵묵히 후배들의 연기를 돋보이게도 했다. 윤여정이 출연한 드라마들은 대부분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고, 여전히 한 시대를 대표하는 드라마들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는 ‘바람난 가족’부터 ‘가루지기', '하녀’, ‘여배우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돈의 맛’,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의 작품에서 활동했다.


캐릭터의 다양함 역시 후배 배우들이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영화에서는 도도했다가, 어느 영화에서는 푸근한 할머니로, 어느 영화에서는 능청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선보였다. 특히 ‘죽여주는 여자’는 어두울 수 있는 주제를 윤여정 특유의 연기력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홍콩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는 등 해외 관심을 뜨겁게 받았고, 캐나다에서 열린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예능에서의 활약 역시 돋보였다. 나영석 PD 사단이 기획한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에 출연해 작품에서의 모습과는 또다른 편안함을 선보였다. 특히 1947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이서진은 물론 정유미, 박서준, 최우식 등 어린 후배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배려하는 모습은 단순한 배우가 아닌 ‘어른’으로서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윤여정은 오래 전부터 인터뷰를 하거나 공개적으로 무엇인가를 언급할 때 “내가 늙어서”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진지한데, 저는 진지하지 않아요. 저는 한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어요. 그러나 저는 이 영화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게 독립영화라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그 이야기는 모든 것이 힘들 것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러나 영화는 잘 만들어 졌어요. (중략) 저는 영화 속에서 영어를 전혀 할 필요가 없었어요. 저에게는 매우 기억할 만한 일입니다. 나이 든 여배우로서 더 이상 고생하며 일하고 싶지 않거든요. 이제 저는 늙었거든요. 하지만 아이삭 감독이 기회를 줬어요. 그래서 저는 감사합니다. 이렇게 만나서 이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어서 기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대중들은 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의미의 ‘늙음’이 윤여정에게 적용될 순 있어도, 어떤 일을 대함에 있어서 열정이 줄어든 ‘늙음’은 배우 윤여정에게 없음을. 그리고 그것은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쥔 순간 다시 한번 전 세계 영화 관객들에게 알려주었음을 말이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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