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미키 17' 봉준호 감독, 끝없는 복제 속에서 인간성을 증명하다 [D:인터뷰]


입력 2025.03.18 13:13 수정 2025.03.18 13:13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차기작은 한국 애니메이션

2054년, 인간이 프린트되어 복제될 수 있게 된 시대. 하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생명이 희생을 정당화 시킬 수 있을까. '미키 17'은 은 소모품처럼 죽음을 강요 당하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의 의미를 묻는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은 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에드워드 애쉬턴 작가가 2022년에 내놓은 소설 '미키 7'이 원작이다.


봉 감독은 원작보다 미키의 죽음 횟수를 7번에서 17번으로 늘리면서 희생을 넘어, 생존 자체가 역설적인 형벌이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저는 캐릭터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편이에요. 현실의 쓰라린 모습을 풍자하다 보니 주인공들을 가혹한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거죠. 미키도 마찬가지예요. 미키는 가혹한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죽는 게 직업이니 이것보다 힘든 상황은 없을 것 같네요. 그렇게 설정한 이유는 그럼에도 미키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파괴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미키 17'을 먼 미래의 SF로 그리는 대신, 현실과의 접점을 강조하며 더욱 설득력 있는 세계를 구축했다. 영화 속 기술과 환경은 과장된 미래상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기술 발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영화 속 휴먼 프린팅 기술 역시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이미 현재 일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먼 미래를 가깝게 끌어왔고 행성의 거리도 땅바닥으로 조금 끌어내렸어요. 지금도 휴먼 프린트를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인체가 아닌 재료를 넣어서 인체 조직과 똑같이 만들어서 출력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귀의 일부분 프린팅에 성공했다고 하더라고요. 2054년에 정말 인간이 출력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우주선을 보면 과거의 느낌이 나도록 만들었어요. 지저분한 화물선이 생각나도록요. 미키의 기억이 저장되는 빨간 벽돌도 마찬가지예요.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이고 현실적으로 다가오길 바랐습니다. 생각해 보면 디지털적인 느낌이 나는 건 휴먼 프린팅밖에 없어요."


봉준호 감독이 ‘미키 17’에서 미키와 나샤의 사랑을 비중 있게 다룬 점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돌이켜볼 때 흥미로운 변화다. 그는 이전 작품들에서 명확한 러브라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적이 거의 없다. 그의 영화 속 인간관계는 주로 가족, 계급, 생존의 문제와 얽혀 있으며, 감정선도 강한 유대감이나 비극적인 단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미키와 나샤의 관계는 미키가 끝없이 죽음을 반복하는 존재로서 인간성을 유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원작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중요한 감정적 중심이 되지만, 봉 감독은 이를 더욱 강조하며 미키가 '소모품'이라는 운명을 극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확장했다.


"제가 각색을 하면 원작에서부터 바꾸는 것들이 있어요. 이번에도 영화 속에서 토니 콜렛이 연기한 독재자의 아내는 소설에 없는 캐릭터죠. 티모도 원작에서는 핫스타처럼 나와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세속적이면서 미워할 수만 없는, 스티븐 연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로 바꿨죠. 다만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던 건 미키와 나샤의 사랑이었어요. 이 챕터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났던 기억이 나네요. 미키만큼이나 나샤도 중요한 캐릭터죠. 미키를 부서지지 않게 해주는 존재니까요."


또한, 사회적으로도 봉합이 이뤄지는 엔딩 역시 봉준호 감독의 기존 작품들에서 보기 어려운, 다소 판타지적인 해피엔딩의 결을 띠고 있다.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악몽으로 끝나면 언제든지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은 의도에서 미키의 악몽 신을 찍었어요. 영화에서 모두 다 극복했다고 믿었는데 일파(토니 콜렛 분)가 나와서 혐오의 말을 쏟아붓잖아요. 그 잔상도 오래 남았으면 했지만, 결국 미키가 더 이상 프린트되길 거부하면서 악몽을 극복하길 바랐어요. 그리고 17번 죽인 애를 또 죽일 수수가 없겠더라고요.(웃음)"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독재자가 공고한 권력을 유지하며 허영과 기만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모습은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왔다. 봉준호 감독은 필리핀의 마르코스 부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부부처럼, 권력자들은 화려한 겉모습과 허울뿐인 문명을 앞세우면서도, 정작 국민들을 착취하고 희생시키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마샬(마크 러팔로 분)과 일파를 비유했다. 이러한 설정은 각국의 정치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나라의 모습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혼란 속에서, 권력 유지와 기득권 다툼이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현역 정치인을 레퍼런스로 삼은건 아니었어요. 모두 과거의 정치인이죠. 영화가 워낙 현재적인 느낌이 있다 보니 보시는 분들이 정치적 스트레스를 투영하는 것 같아요. 2021년에 시나리오를 썼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어요. 마크 러팔로가 워낙 연기를 잘해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악역들은 원래 매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독재자들을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그게 위험한 거고요. 그걸로 대중을 현혹해 독재를 가능하게 만들죠. 딱딱하고 무서운 리더도 있지만 마샬 같은 정치인들도 있기 마련이죠. 감독 입장에서는 제가 너무 좋아하는 마크 러팔로, 토니 콜렛을 마샬과 일파에 대입하니 주체할 수없이 흥분되더라고요. 두 사람이 한 번도 같이 작업한 적이 없어서 신선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샬과 일파가 권력과 기만으로 군림하는 존재라면, 그 반대편에는 생존의 터전을 침략당한 크리퍼들이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들을 통해 독재자와 억압받는 존재 간의 극명한 대비를 그려낸다.


" 2023년 컴퓨터 그래픽으로 크리퍼를 만들었어요. 크리퍼들이 조코를 돌려달라 벌판에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잖아요.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나오는 게 인간 사회와는 명백한 대조를 이룹니다. 인간 사회 비겁하게 미키 하나를 계속 죽게 만들잖아요. '그게 너의 일이잖아'하면서 아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크리퍼는 한 아이를 구하기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죠. 대신 마마 크리퍼가 엄청난 협상가라 짧은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치명타예요. 마샬이 지질한 독재자라면 마마 크리퍼는 멋진 정치가죠. 동물이나 크리처를 등장시키는 건 그런 재미인 것 같아요. 그들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한심한지 볼 수 있게 해주니까요."


'설국열차', '옥자'에 이어 봉준호 감독의 세 번째 영어 영화인 '미키 17'에는 로버트 패틴슨, 마크 러팔로, 나오미 애키, 토니 콜렛 등 할리우드 스타 배우들이 출연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거머쥔 이후 처음 선보이는 신작이기에,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할리우드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


"달라진 건 이제 저를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거절당하지 않고 캐스팅을 마칠 수 있었어요. 로버트 패틴슨도 이미 '살인의 추억'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제 영화 속 배우들이 움직이는 톤, 뉘앙스들을 그들이 느낀 거죠. 제가 그 배우들의 연기톤을 보고 의도적으로 '내 영화는 이렇게 해야 돼'라는 강요나 부탁을 한 건 없어요. 토니 콜렛이 로버트 패틴슨의 뾰루지를 터뜨리는 장면을 현장에서 보더니 '이게 봉준호 톤이지'라면서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토니의 머릿속에 저라는 사람의 영화는 우주선이 나와도 저런 식으로 가는구나 느낀 거겠죠.(웃음)"


'기생충'으로 2020년 아카데미 작품상 등 4관왕을 차지한 이후, 봉준호 감독은 전 세계적으로 더 큰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남기고 싶어 한다. 거대한 성공 이후 부담감이 따를 법도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며 창작의 흐름을 이어가고 싶을 뿐이다.


"기생충'으로 예기치 못하게 상을 너무 많이 받아버려서, 그것 때문에 '세계를 제패했다'라는 표현이 많은데 민망하네요. 그런 표현은 위대한 차범근 선수, 손흥민 선수,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이런 분들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환경과 조건에 던져져도 끊임없이 계속 이상한 톤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인터뷰'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