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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접종 후 방치되고 있는 노인들…속도전에 급급한 정부, 사후 관리는 미흡


입력 2021.05.04 05:00 수정 2021.05.03 17:35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최다은 기자

특히, 홀로 사는 독거노인들이 문제…159만명, 전체 노인의 20% '관리 사각지대'

"75세 이상 고령층 노인들, 연락 안 되면 계속 전화·방문 반복해야"

"백신 이상반응, 3일 후 부작용 지속성 관건…특별관리기간 좀 더 길게 잡아야"

만 75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체육문화회관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부가 11월 집단면역 달성을 목표로 백신 접종 속도전에 나선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한 75세 이상 고령자가 숨지거나 중태에 빠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아직 정확한 인과관계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백신을 맞은 후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사는 고령자들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홀몸 노인들이 '사후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전북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고창군 보건소에서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은 A(79)씨는 접종 후 귀가한 뒤 쓰러져 이틀 뒤 발견됐다. A씨는 백신을 접종한 15일 오후 4시쯤 귀가한 뒤 정신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족들은 A씨가 연락이 닿지 않자 17일 오후 3시쯤 집으로 찾아가 쓰러져 있는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현재 중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창군 보건소는 A씨가 백신을 접종한 후 세 차례 연락을 받지 않았지만 자택 방문 등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질병관리청 지침에는 75세가 넘는 고령층이 백신을 맞으면 지자체 공무원이 가족이나 보호자가 없는 노인 등을 중심으로 적어도 3일 동안 매일 1회 이상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해 상태를 살피도록 하고 있다.


충남 홍성에서도 홀로 살던 80대 노인이 지난달 24일 화이자 백신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홍성군 공무원들은 백신 접종 후 사흘간 홀로 지내는 사망자의 건강 상태를 전화로 확인했지만, 4일째 되는 날 숨졌다. 서울에서도 홀로 살던 B(87)씨가 지난 27일 화이자 백신 2차 접종을 마치고 29일 숨진 채 발견됐다.


만 75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체육문화회관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을 마친 후 이상반응 관찰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75세 이상 백신 접종 고령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사후 관리 대응이 아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6일 안산에서 백신을 접종한 김모(84)씨는 "가족과 사는 사람들은 처지가 좀 낫지만,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들은 백신 맞고 홀로 쓰러져 있는데도 아무도 알 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나라에서 여러 건의 부작용 의심 사례가 있는데도 피해보다 이득이 더 크다며 맞으라고 권유했으면 백신접종 후 사후 관리도 제대로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모(81)씨는 "지난달 27일 백신 접종을 하고 나서 왼쪽에 주사를 맞은 팔이 뻐근하고 속도 약간 메쓱거리며 어지러웠는데 별도로 보건소에서 이상반응에 대해 묻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며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노인들은 언제 죽어도 모를 텐데 백신을 맞고 아픈 데는 없는지 나라에서 제대로 확인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토로했다.


만 75세 이상 고령자들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달 1일 오전 서울 송파구 체육문화회관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어르신들이 접종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홀로 산 지 40년이 넘은 김모(75)씨는 지난 20일 보건소에서 백신을 접종했지만, 접종 후 3일 동안 기관으로부터 건강 상태를 묻는 전화는 따로 받지 못했다. 창문 하나 없는 한 평 남짓한 방에서 거주하고 있는 김씨는 "조그마한 쪽방에 딱 붙은 벽 하나가 있을 뿐인데, 백신 맞고 아파 쓰러지면 옆방 사람들이 알기나 하겠나"라고 말했다.


김모(80)씨는 "지난 19일 백신을 접종했는데, 난청이 있어 전화가 온 지도 모르겠지만 설사 전화가 와도 의사소통이 어렵다"며 "백신 맞다 쓰러지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남양주에서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거주하는 오모(81)씨는 "자식들과도 떨어져 살아 백신 맞고 이상반응으로 쓰러져도 아무도 모를 텐데 몹시 불안했다"고 우려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11일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0'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독거노인은 지난해 기준 총 159만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노인 인구 가운데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로, 2000년 16.0% 이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위기상황 때 도움 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인 사회적 고립도는 27.7%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환자 치료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화이자 백신 접종이 시작된 27일 오전 서울시 중구 국립중앙읭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 내 무균 작업대(클린벤치)에서 의료진이 화이자 백신을 주사기에 소분 조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범중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전체 노인 인구에서 7% 정도만 복지관을 이용하는데 90% 이상의 노인들은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사후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사례도 가정 방문이 조속히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라며 "75세 이상 고령층 노인들이 연락이 안 되면 방문해야 하고, 방문했는데도 없으면 한 주 내로 다시 전화와 방문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현 정부는 불안감 없이 백신을 접종하라고 속도전을 펼치는데 사후 관리에 관심을 더 기울여 안전하게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고령층 접종자에게 3일만 전화·방문하는 건 크게 의미가 없다"며 "백신 이상반응은 3일 후 부작용 지속성이 관건이기 때문에 특별관리 기간을 좀 더 길게 잡아 접종 후 이상 반응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사후 관리 대상 및 기준에 대해 향후 확대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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