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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크레딧(62)] 김민구 작곡가 "기회는 기다리는 것 아닌, 찾아가는 것"


입력 2021.12.19 11:19 수정 2021.12.18 18:20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누구 없소'로 데뷔

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 같은 노래 한 곡이 발표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력이 동반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외 프로듀서, A&R, 엔지니어, 앨범 아트 디자이너 등 작업실, 녹음실, 현장의 한 켠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작곡가 김민구가 처음으로 세상 사람에게 들려준 곡은 이하이의 '누구 없소'다. 2019년 발표 당시 '누구 없소'는 모든 음원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해외 차트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적을 거뒀다. 칠레,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9개 국가 아이튠스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미국에서는 7위에 이름을 올렸다.


첫 데뷔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김민구는, 기숙사형 고등학교에서 공부만 하며 음악을 한 번도 배워 본 적 없었다.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없었다. 그저 초보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앱을 통해 부모님 몰래 혼자 작곡을 하던 게 지금의 발판이 됐다. 그리고 혼자 몰래 만들었던 노래는 네이버에서 주최하는 '그라폴리오 틴에이저' 작곡 공모전에 4등으로 입상했다. 이후부터는 그저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찾아다니며 길을 만들어나갔다.


"부모님께서 반대가 심했어요. 음악을 하려면 서울에 있는 공대를 가라고 조건을 거셨죠. 설득이 도저히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앱으로 몰래 노래를 만들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작곡 공모전에서 4등을 한 후, 자신감이 조금 생겼어요. 그 노래를 들고 큐브 엔터테인먼트에 찾아갔죠. 원래는 외부인이 못 들어가는데 그날은 문이 열리더라고요. 3층에 프로듀서 룸에 있길래 그곳에 올라갔고 직원 한 분을 만났어요. 무작정 '저는 음악을 하는 독학하는 학생인데 만든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라고 했죠. 그런데 장문의 메일이 왔어요. 그분이 큐브의 제작팀장인데 퀄리티는 낮으나 노래가 괜찮으니 열심히 해보라고요."


현직에 종사하는 프로에게서 칭찬을 받은 김민구는 한층 더 자신감을 얻고 음악에 관련된 카페에 자신이 만든 노래를 게재했고 데모를 만들어 JYP 작곡가 퍼블리싱 오디션에 응시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오디션에 붙을 줄 알았는데 1차에서 떨어졌어요. 하하. 숭실대학교 전기공학부에 입학해서 학업과 작곡을 병행하던 시기였는데,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지원을 하나도 해주지 않으셨어요. 에어컨이 안 나오는 옥탑방에서 몸에 분무기 부려가며 생수병을 얼려 껴안아가며 만든 노래였거든요. 노래 퀄리티도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노래를 버릴 수 없어 전국의 프로듀서들에게 다 '제 노래를 들어봐달라' DM을 돌렸어요. 그런데 답장이 딱 한 분에게 왔어요. 그분에 저를 이끌어주고 계신 YG 메인 프로듀서 강욱진 형님이셨죠. 답장이 왔을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소리 질렀어요. 너무 기뻐서요."


현재 YG 퍼블리싱 소속 작곡가인 그는 그렇게 YG엔터테인먼트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강욱진 프로듀서는 위너 '아 예', '밀리언즈', '릴리릴리' 등 위너와 아이콘, 젝스키스 등의 앨범을 진두지휘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강욱진 형님이 사옥에 한 번 놀러 오라고 하셔서 갔는데 제게 멜로디와 가사 쓰는 센스가 좋으니 이하이의 노래를 만들어보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만들어진 트랙 위에 멜로디와 가사를 써볼 수 있는 기회가 왔어요. 바로 집에 가서 잠도 못 자고 '누구 없소'라는 제목을 붙이고 만들어서 갔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때가 스물한 살이었어요. 운과 타이밍이 엄청 좋았죠."


'누구 없소'로 음원차트 1위를 석권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매번 의뢰를 받으면 다시 출발선에 서야 했다.


"'누구 없소'로 제 인생이 바뀐 줄 알았어요. 하하.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누구 없소' 같은 곡이 한 열 개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걸그룹 타이틀곡 하나 만든다 하면, 500곡 이상이 모여요. 그중에 한 곡 선정이 되는 거니까 매번 압박감과 불안감이 공존해요. 예전에 작곡하시는 형님들이 저에게 왜 작곡하냐고 공대 가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던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던 거죠. 그만큼 치열하고 힘든 시장인 것 같아요."


김민구는 '누구 없소' 이후 아스트로의 '다야', 리마인드 '두고 가지 마', 잭엔웨일 '부딪쳐', 베네로직 '반복'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발표했다.


"제가 만든 곡이 장르가 다양한 이유가 방향성을 못 잡고 음악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프로 작곡가가 되고 싶으면 방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개념이 없이 좋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란 생각만 있었어요. 지금은 장르 구별엔 선을 긋지 않지만 케이팝 신에 몸을 확실히 담근 것 같아요."


그는 현재 JYP 소속 프로듀서 김승수 작곡가와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김승수 작곡가 역시 찾아낸 인연이다.


"제가 실용음악원에 잠깐 다녔는데 그때 프로가 아닌 실용음악과 출신 분이 선생님으로 배정됐어요. 그래서 가장 커리어 좋은 프로에게 배우고 싶다고 항의했더니 배정된 선생님이 김승수 형이었어요. 그런데 2개월 만에 형이 학원을 그만두셔서 제가 일방적으로 제발 돈 줄 테니 저 가르쳐달라고 따라다녔어요. 그런데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고 거절당했죠. 그래도 인맥은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 꾸준히 연락을 드렸죠. 그리고 지금은 형과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됐어요."


많은 신인 작곡가들이 주변의 감언이설, 혹은 가스라이팅에 속아넘어가 자신의 저작권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민구는 '좋은 어른'들의 손길로 불편해지는 상황 없이 작곡가의 일을 하고 있다.


"강욱진, 디기(Diggy), 김승수 이 세 분은 저의 롤 모델입니다. 강욱진 형, 디기형 같은 경우는 '누구 없소' 이후 그래도 부족함을 느껴 공부를 해보려고 한 저에게 자신의 작업실에 와서 보고 배우라고 해줬어요. 공짜로 과외를 해주신 셈이죠. 김승수 형도 저에게 많은 가르침과 기회를 줬어요. 지금 저에게도 믿고 따라와 주는 친구가 있어요. 저도 그들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나눠주는 형님들 같은 선배가 되고 싶어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분들입니다. 제 인생을 바꿔준 분들이죠. 하하."


'누구 없소'로 데뷔할 때 1위를 했지만 이것을 마지막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슬로건이다.


"작곡가로서 마지막 목표는 제작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만한 성과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열심히 노래를 만들고 있어요. 최근 인기 아이돌 그룹의 타이틀을 만들어 신곡이 또 나올 예정입니다. 한 번 들어도 기억에 남는 그런 노래를 만들 겁니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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