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취임사에서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더니…
'환경부 블랙리스트'로 적폐 반복
현 정권 장관과 靑 참모 유죄 확정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우리 정당사의 오랜 법칙이던 '10년 주기론'이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태우~김영삼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정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여야의 정권교체는 10년 단위로 이뤄져왔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정부를 마감하고 정권교체로 출범한 문재인정권은 출범 5년만에 정권재창출을 못하고 정권을 내놓을 위기에 몰려 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달 29일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정권교체 여론은 과반을 넘는 54.4%에 달했으며, 정권재창출 여론은 38.2%에 그쳤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현 정권은 왜 이런 정권 실패에 몰렸을까. 부동산 정책파탄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적 무능, '편가르기' 일관으로 인한 국민적 피로감 등도 원인이겠지만, 자신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권이 될 것인양 호언장담해놓고 실제로는 구태를 반복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현 정권 들어 급속히 보편화된 이른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사에서 "구 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다"며 "지금 내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고 자신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만이 취임사 중에서 유일하게 지켜진 약속이라는 비아냥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조차 지켜지지 못했다. 옛 정권에서 벌어졌던 각종 적폐 행위는 새 정권에서도 그대로 반복됐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이 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옛 정권에서 빈번이 행해졌던 '구 시대의 관행'과 현 정권이 '과감히 결별' 하기는 커녕, 익숙한 모습으로 이를 반복한 대표적인 사례다.
현 정권은 출범 직후 임기가 남아있는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을 상대로 이전 정권에서 임명됐다는 이유로 문건까지 만들어 관리해가며 사직을 종용했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신미숙 청와대 비서관과 공모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표 제출을 종용하고, 이렇게 만들어낸 자리에는 청와대가 내정한 인물이 임명되도록 선발 절차에까지 개입했다.
한국환경공단·국립공원공단·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환경보전협회 등에 실제로 친여권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새로이 임명됐다.
대법원은 지난달 27일 김은경 전 장관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김 전 장관을 법정구속했다. 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도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의 유죄가 확정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례적으로 현 정권 임기 내에 내부 폭로를 통해 적폐 행위의 전모가 드러나, 검찰 수사를 거쳐 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내려진 사례다. 아직 국민적 의혹으로 남아있는 수많은 사건들은 향후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 알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임대차 3법' 강행통과 와중에 자기
세입자 전세보증금 급히 올린 靑 참모
文, 시정연설서 잘못 전혀 언급 없어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정리 단념"
'10년 주기론'이라고 하지만 임기 중에 완전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대통령은 많지 않았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은 '중간평가'에 해당하는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참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 이어 이듬해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전국단위 선거에서 연전연승하며 의회권력·행정권력·지방권력을 모두 수중에 넣었다.
문 대통령에게 의지가 있었다면 자신이 야당 대표로 있을 때 줄기차게 요구했던 협치(協治)를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취임사에서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천명했던 내용을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 보여진 것은 협치의 실종과 '내로남불' 뿐이었다.
2020년 총선 이후 5월 30일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현 정권과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6월 29일까지 모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는 원구성을 마무리한 뒤, 임대차 3법을 밀어붙였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는 과정을 보면 △7월 29일 법사위 통과 △7월 30일 본회의 의결 △7월 31일 국무회의 심의 즉시 시행 등으로 단 사흘만에 군사작전처럼 입법이 매듭지어졌다.
이 과정에서 온갖 '내로남불' 사례가 빈발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임대차 3법 시행을 이틀 앞두고 세입자 전세보증금을 전격 인상했다가, 민심이 흉흉해지자 경질됐다. 민주당 의원과 친여 무소속 의원 일부도 임대차 3법 시행에 앞서 임대료 인상을 단행해 구설수에 올랐다.
'내로남불' 속에서 군사작전 하듯 통과된 '임대차 3법'은 현장에서 온갖 문제점을 양산하는데도, 한 민주당 의원은 임대차 3법의 임대 기간 '2년+2년'을 '3년+3년'으로 오히려 확대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해 민심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 전개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듯 문재인 대통령은 정기국회에 행해진 시정연설에서 "임대차 3법을 조기에 안착시켜 전세 시장을 기필코 안정시키겠다"며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처리에 협력해주고, 경찰법·국정원법 등도 입법으로 결실을 맺어달라"는 새로운 '청구서'만 내놓고 갔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며 "거짓으로 불리한 여론을 덮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임기 중 국회를 대하는 태도와, 시정연설에서 자신의 잘잘못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모두 이와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통법부로 전락한 국회의 모습과 책임정치의 실종은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전혀 없는 내용이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가장 강도 높게 비판했던 행태라는 점에서, '내로남불'은 비단 청와대 참모나 집권여당 의원들만의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 정권 임기 중후반부에 펴낸 저서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문재인정권의 내로남불 사례를 일일이 정리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말았다"며 "거의 모든 게 내로남불이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강 교수는 "착한 권력을 표방했거니와 자신들에게는 그런 DNA가 있다고까지 큰소리친 권력 집단이 내로남불의 화신이 될 때 어찌해야 하느냐"며 "권력이 권력을 죽이는 '권력의 역설'을 한국 사회에서 목도하고 있다"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