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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금 안 치르고 점유권 편취한 집주인, 무죄…왜? [디케의 눈물 208]


입력 2024.04.12 05:11 수정 2024.04.12 05:11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피고인, 임차보증금 돌려주겠다고 속여 점유권 넘겨받아…1·2심, 유죄→대법원, 무죄

법조계 "검찰, 공소제기 아쉬워…임차보증금 아닌 점유권 피해로 잡아 무죄 선고된 것"

"대법원, 점유권까지 사기죄로 처벌하면 형사처벌 영역 넓어지는 것 우려해 무죄 선고"

"임차인, 남은 보증금 지급명령 및 소 제기 가능…이자 또는 지연손해금 받을 수 있어"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gettyimagesBank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gettyimagesBank

임차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거짓말로 임차인에게서 오피스텔 점유권을 가져간 임대인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점유권이 재산상 이익에 해당하는 지만 쟁점으로 따진 것으로 보인다며, 점유권은 사기죄 성립 조건인 재화 및 재물에 해당하지 않아 무죄가 내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임차인에게 남은 보증금 5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부분은 사기죄가 성립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점유권을 이전하는 대신 남은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한 것인 만큼 임차인이 재산상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A씨의 특정경제범죄법 위반(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피해자 B씨와 본인 소유의 오피스텔에 대한 전세계약을 임차보증금 1억2000만원에 체결했다. 이후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B씨는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A씨는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데도 "일단 5000만원을 송금해 주고 7000만원은 다음에 송금해 주겠다"며 "임차인이 이사를 오기로 했으니 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속였다. B씨는 잔금을 받지 못한 채 집비밀번호를 알려줬고 새 임차인은 해당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이에 검찰은 B씨를 속이고 오피스텔 점유권을 편취한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1·2심은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세입자는 피고인의 기망행위에 속아 피고인에게 점유를 이전했기 때문에 사기죄의 재산상 처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고인 말에 속아 나머지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지 않고 오피스텔의 점유권을 이전했더라도 사기죄에서 재산상의 이익을 처분했다고 볼 수 없어 사기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며 판단을 뒤집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데일리안 황기현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데일리안 황기현 기자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이 사건 판결에서는 '점유권'이 재산상 이익에 해당하는 지만 쟁점으로 따진 것으로 보인다"며 "점유권 자체는 사기죄 성립 조건에 해당되는 '재화'나 '재물'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를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선적으로 검찰의 공소제기가 아쉽게 느껴진다. 검사가 임차보증금이 아닌 점유권을 피해로 잡아 기소했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단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라며 "임차인에게 피해가 있는 게 명백한 사건인 만큼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문유진 변호사(법무법인 판심)는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임대인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임차인이 점유권을 내주기에 앞서 '임차권등기명령' 제도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아울러 점유권까지 사기죄의 주체로 볼 경우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도 형사 처벌의 영역으로 넓어질 수 있는 부분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문 변호사는 "임차인은 남은 임차보증금 5000만원에 대한 반환채권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지급명령이나 소를 제기할 수 있다"며 "점유권을 포기한 날부터의 이자 또는 지연손해금 등을 임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예림 변호사(법무법인 심목)는 "이번 판결에서는 보증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점유권을 이전했는지가 쟁점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임차인이 점유권 이전으로 재산상 손해를 본 것이 아니니 사기죄 처벌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다만 임차인에게 보증금 500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부분은 사기죄로 인정됐어야 한다고 본다. 점유권을 이전하면서 반대급부로 보증금을 돌려받기로 한 것이니 사기죄 성립이 안 된다는 건 판결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현행법상 임대차 계약이 끝날 때 임차인과 임대인은 보증금 반환과 점유권 이전을 동시에 이행해야 한다"며 "임대인들이 '점유권을 먼저 이전해주면 보증금을 돌려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꼼꼼히 확인하고 이행하는 게 안전하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판결로 점유권을 먼저 이전해주는 게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도 생겼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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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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