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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백서 ⑩] '깜냥' 안 되는 참모가 선거 망친다


입력 2024.04.23 06:00 수정 2024.04.23 06:00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후보자만 깍듯이 모시는

'밤문화 일꾼' 아니라

유권자 섬기는 '지역 일꾼'

어떻게 육성할지 고민해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시청 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22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달 중순, 국민의힘 소속으로 본선에 진출한 A 후보 캠프를 방문했다가 귀를 여러 번 후벼팠다.


당시 외출 중이던 A 후보가 선거사무소에 들어서자 껄렁하게 앉아있던 한 남성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허리를 굽힌 채 양손으로 후보 동선을 안내했다. 누군가 "각이 좋다"며 "나이트 출신이라 역시 다르다"고 했다. 커다란 책상에서 오순도순 과자를 까먹던 예닐곱 명이 너나 할 것 없이 낄낄거렸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A 후보 캠프에선 소위 '밤문화' 출신 인사가 OO위원장 등 여러 직함을 달고 있었다.


출신이 문제라는 얘기가 아니다. 뜻이 있다면 누구나 정치권에 뛰어들 수 있다. 다만 뜻을 펼칠 깜냥이 되느냐가 문제다.


A 후보 캠프가 '자격 미달 캠프'라는 확신을 갖기까진 단 며칠이면 충분했다.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선배 기자는 A 후보 캠프를 "xx들"이라고 했다. 유동 인구가 극히 드문 공간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불러 마이크를 쥐여 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었다.


총선, 4년마다 열리는 전국 단위 '시장'
'상품'은 후보인데 캠프원은 본인 홍보


선거는 승자가 모든 것을 거머쥐는 '시장'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열리는 전국 단위 장(場)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정당은 지역구별로 후보라는 '상품'을 진열하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각 후보들이 꾸린 선거캠프 역시 더 많은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갖은 수를 쓴다.


장사가 잘되는 집은 사장과 직원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다. 다른 주머니 차는 직원이 있는 가게는 잘 될 장사도 망한다.


지난 10일 열린 4년장에서 간신히 체면치레한 여당은 어땠나. 시장에서 팔려야 할 상품은 후보인데, 본인 홍보에 혈안이 된 캠프원들이 상당했다.


지역 정가 관계자 B씨 소개로 고령층 단체를 이끄는 지역 인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수도권도 마찬가지지만, 지역 정가에선 '조직'을 쥐락펴락하는 이들의 입김이 세다. 실제로 관련 지역구 후보들은 해당 지역 인사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애쓰는 분위기였다.


지역 인사는 본인이 평가하는 판세를 언급하며 의견을 물었다. 느꼈던 바를 가감 없이 전했다. 지역 인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자리를 마련했던 B씨가 입을 뗐다. 판세가 녹록지 않으니 자신이 특정 지역구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힘 써달라는 얘기였다.


B씨를 다시 마주한 곳은 다른 지역구였다. 역할을 맡고 싶다던 지역구와는 자동차로 30분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B씨는 그곳에서 빨간 점퍼를 걸친 이들과 웃으며 악수하고 있었다. 이내 눈을 마주친 그는 "여기까지 오셨네?"라고 했다.


與, '시장' 수호 세력이라며
'4년장'에선 연거푸 패배
野 '선순환 사례' 보고 배워야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호하는 세력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시장 생리를 잘 안다면서 4년마다 열리는 '선거장'에선 연거푸 고개를 떨궜다.


물론 현장에서 맞닥뜨린 '바람'의 힘은 어마무시했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 이번 총선에선 대통령실발 악재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도 인물론을 앞세워 분투를 벌인, 심지어 판세까지 뒤집은 여당 후보가 적지 않았다. 좋은 상품은 팔리게 돼 있다는 시장의 진리가 다시금 확인됐다.


국민의힘은 매대에 올릴 상품의 질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새 얼굴을 발굴해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선한 인물도 고이다 못해 썩어가는 지역 정치에 급하게 발을 담그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생리를 파악하고 뭔가 좀 해봐야겠다 싶을 땐, 선거가 이미 막바지다. 한동훈 비대위원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내키지 않더라도 야당을 보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지역구 청년위원장을 맡았던 인사가 여의도에 입성해 중량감을 키워가는 선순환 사례를 국민의힘도 만들어 내야 한다. 후보자만 깍듯이 모시는 '밤문화 일꾼'이 아니라 유권자를 섬기는 '지역 일꾼'을 어떻게 육성할지 심각하게 고민할 때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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