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특검법 거부권…취임 후 6번째·법안 10건째
대통령실 "재의요구 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직무유기"
야당, 오는 28일 재의결 공언하며 장외투쟁 등 총공세
윤석열 대통령이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특검법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으로 처리돼 7일 정부로 이송된 지 14일 만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이후 6번째이고, 법안 수로는 10건째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당위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채상병 특검법 도입에 대한 찬성 의견이 과반을 넘고 야당이 장외투쟁 등 총공세에 나서면서,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국정 기조 변화를 요구한 민심의 결과물이었던 여당의 4·10 총선 참패 후 행사한 첫 거부권이라, 윤 대통령이 감수해야 할 정치적 부담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힌 뒤 야당이 단독으로 강행 처리한 채상병 특검법은 헌법 정신과 특검 제도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정 실장은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 속하는 권한이자 기능이다. 특검 제도는 중대한 예외로서 입법부의 의사에 따라 특별검사에게 수사와 소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국회는 지난 25년간 13회에 걸친 특검법을 모두 예외 없이 여야 합의에 따라 처리해 왔는데, 야당이 일방 처리한 특검법은 여야가 수십 년 지킨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기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특검법은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하여 대통령의 특검 임명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다"며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다. 야당이 고발한 사건의 수사 검사를 야당이 고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채상병 특검법은 대한변호사협회가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속하지 않은 교섭단체인 더불어민주당이 2명으로 추리고, 윤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1명을 선택하도록 했다.
또 "특검 제도는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하거나 수사의 공정성·객관성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보충적·예외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제도"라며 "채상병 순직 사건에 대해서는 현재 경찰과 공수처에서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도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국민들께서 납득이 안 된다고 하면, 그때는 내가 특검을 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며 '선(先)수사·후(後)특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 실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전임 문재인 정부 때 일방적으로 설치했던 수사기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금 공수처의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라고 했다.
아울러 "'사건의 대국민 보고'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실시간 언론 브리핑을 하도록 했다"며 "이 조항은 법상 금지된 피의사실 공표를 이 사건에 한하여 허용하고 아예 제도화하는 잘못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채상병의 안타까운 사망이 더 이상 정쟁의 소재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국회의 신중한 재의를 요청드린다"고 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헌법의 수호자라는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며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이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대통령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민심의 관점은 다소 다르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100% 무선전화면접으로 조사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67%에 달했다. 반대한다는 응답자 비율은 19%였고, 모름·무응답은 15%였다.
한국갤럽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100% 무선전화면접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찬성이 57%, 반대가 29%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민주당 등 야당은 강하게 반발하며 오는 28일 본회의를 열고 특검법을 재의결하겠다고 공언하며 총공세에 돌입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본청 앞 계단에서 조국혁신당·새로운미래·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 등과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윤 대통령은 범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백한 것" "국민의 분노, 역사의 심판 앞에 윤석열 정권은 파도 앞에 돛단배와 같은 신세"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야 6당은 오는 25일엔 시민사회와 함께 서울 시내에서 '범야권 비상행동'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