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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돌섬 [조남대의 은퇴일기(62)]


입력 2024.10.08 14:01 수정 2024.10.08 14:23        데스크 (desk@dailian.co.kr)

울릉도는 여러 차례 찾았던 곳이다. 이번에는 멀미에 시달리지 않고 평온하게 오갈 수 있어 자연의 청정함을 더 선명하게 체감할 수 있었다. 망망대해에 외롭게 떠 있는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원의 모습에서 50여 년 전의 나를 본 듯했다. 국민의 관심과 응원이 그들에게 사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실감했다.


포항과 울릉도를 운행하는 2만톤급의 울릉크루즈


울릉도를 찾을 때마다 멀미는 나를 괴롭혔지만, 올 6월 처가 식구들과 함께한 여행은 달랐다. 새로 도입된 2만 톤급의 초대형 울릉크루즈는 마치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포항에서 출발한 밤을 품은 배는 아침의 일출과 함께 울릉도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태양


새벽을 여는 까만 바닷길과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은 자연이 빚어낸 경이였다. 도동항에서 저동항까지 이어지는 1.9킬로미터의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쪽빛 바다가 길동무가 되어 굽이굽이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행남해안산책로는 CNN이 '한국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며 소개할 정도로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돌을 깎아 만든 난간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다 보면 오래전에 방문했던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라는 이탈리아 나폴리 해변 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멋지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파도에 휩쓸려 춤을 추는 해초와 유유히 비상하던 갈매기가 해무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넋을 잃는다. 여기에다 좌판 아주머니들이 산나물과 고기를 덤으로 듬뿍 얻어주는 따사로운 손길을 접한다면 이곳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울릉도의 해안 산책로


일몰 후 주변 바다가 붉게 물들여지는 풍경


해안선을 돌다 남서일몰전망대에 서면 사태구미 해안 절벽에서 붉게 타오르다 바다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은 가히 절경이다. 한동안 주변 바다와 하늘을 물들이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인간 세상에서 할 일을 마치고 사라지는 우리의 일생과도 닮아있지 않은가. 칠순을 눈앞에 둔 시점에 이런 자연의 섭리를 보니 가슴이 저린다.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모든 욕망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태양은 내일을 기약하고 떠나지만, 인간은 그러지 못한 채 아등바등 살다가 사라진다. 손에 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 아무런 기약 없이 덧없이 흘러가는 존재가 아니던가. 삶의 무상함에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저무는 태양에게 해답을 구해야 할까나.


왼쪽의 서도와 오른쪽의 동도 풍경


독도 경비대원들이 상주하는 동도


주민이 거주하는 서도


울릉도에 오는 여행객들의 제일 큰 관심사 중 하나가 독도에 들어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쉽지 않다. 바람과 파도가 허락해 줘야 하고 심지어 3대가 공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나 역시 몇 번의 울릉도 여행 중에 독도를 밟아 본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울릉도에서 직선거리로 87.4킬로미터이고,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도 보인다.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지 않는가.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지만 어림없는 소리가 아니랴. 우리가 실효적으로 관리하는 땅이며, 역사적 사실을 근거해도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번에는 독도에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레는데 유람선 TV 화면에서 '독도는 우리 땅' 노래가 흘러나온다. 코끝이 찡해온다. 선장은 곧 도착한다며 경비대원들에게 선물하려면 선내 매점에서 물품을 미리 사라고 안내한다.


독도 선착장 부근에서 개와 함께 경비를 서고 있는 대원들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내 독도는 단지 섬이 아니라 그곳에서 묵묵히 근무하는 경비대원들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독하게 근무하는 대원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라면 과자 음료수 같은 대원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준비했다. 독도에 내리자 경비대원들과 함께 삽살개가 제일 먼저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많은 사람이 대원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도 소박한 선물을 전달했다. 그들의 미소는 그동안의 외로움과 고생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듯보였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을 때 보이는 행동과 모습에서 조카를 만난 듯 반갑고 뿌듯했다.


경비대원과 기념촬영하고 있는 가족


50여 년 전 군대 시절이 떠오른다. 한겨울 원주 부사관학교에서 6개월간 훈련받을 때였다. 아침 일찍 윗옷을 벗고 맨몸으로 시내로 구보 나갈 때 군가를 목청껏 부르면서도 춥거나 힘든 줄 몰랐다. 시민들의 응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힘이 절로 났다. 해안 초소에서 근무할 때도 위문을 오거나 주민들이 전해주는 고기 몇 마리와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에도 국토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창살 없는 감옥 같은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근무하는 대원들은 얼마나 외로울까. 보이는 것은 어쩌다가 저 멀리 지나가는 배뿐이고, 파도 바람 갈매기 울음소리만 들릴 테니 말이다. 우리가 건넨 소소한 선물이 그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함께 버텨내고 있다는 응원의 마음으로 받아들였기를 바란다.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군대는 군함과 사기로 유지된다."라고 했으며, ‘전쟁론’을 저술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에서 승리는 물리적 힘보다 정신력으로 결정된다."라고 할 정도로 사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간식거리를 챙겨주며 격려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여 사진을 찍을 때 경비대원들의 사기는 절정에 달하지 않았을까. 간식을 챙기지 않았으면 얼마나 큰 후회를 했을까 생각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국민의 응원이 대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독도 선착장에 내려 주변을 둘러보는 관광객

외로움 속에서도 독도 수호를 위해 힘쓰는 늠름한 대원들이 있기에 그 땅은 우리 것이다. 독도에 발을 디뎌보자.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소중한 영토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경비대원들에게 전한 작은 선물이나 응원은 사기를 북돋우는 중요한 요소이고 국토를 방위하는 원초가 아닐까. 애국도 어렵지 않음이라. 너와 나 함께 손을 맞잡는 것이리니. 혼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공동체의 따뜻함이 아니겠는가.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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