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사실상 수도권 외곽 서민 아파트 대상
“투기도 투자도 아닌 실수요자까지, 이자 폭탄에 집 포기”
#1. 투기도 아니고 투자도 아니다. 평생 내 집 한 칸 없다가 이제 아파트라는 게 생겼는데 정부가 대출을 막는단다. 아파트 집단대출 규제와 서민금융대출 규제는 서민에게 칼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집단대출이 안 되면 제2금융권으로 넘어가 이자 폭탄을 맞아야 하고, 결국 집을 포기해야 한다.
#2. 기금대출을 취급하는 제1금융권에서 ‘국토교통부 및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주택도시기금대출 취급 제한 방침 협조’라는 명분을 내세워 사전 공지 없이 무차별적인 디딤돌 취급을 중단하고 있다. 평생 내 집 마련이 목표였던 서민들이 갑작스러운 고통 앞에 놓였다. 이런 혼란을 틈타 은행들은 더 높은 금리의 대출로 유도하고 있다. 이게 정녕 가계대출 증가를 감소시키기 위한 정책이 맞나.
#3. 디딤돌 대출 맞춤형 관리방안에는 ‘청약 당첨자의 신뢰 보호를 위해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했다’고 나와 있지만, 내년 상반기 입주까지 적용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한 것인가.
최근 국회 전자청원에는 이처럼 대출 규제 철회에 관한 청원 글이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이 정부의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발표에 대한 원성의 글이다.
정부는 다음달 2일부터 수도권 디딤돌 대출에 그동안 면제했던 ‘방공제’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대출 한도가 줄어들게 된다.
방공제는 대출을 받을 때 소액 임차인에게 내줘야 하는 최우선 변제금을 대출금에서 빼고 빌려주는 것을 말한다. 최우선 변제금은 서울 55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4800만원이다.
예를 들어 부부가 경기도 과밀억제권역에서 5억원 아파트를 구입하는 경우 현재는 5억원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70%를 적용해 방공제 없이 대출 가능액이 3억5000만원 수준이었으나, 앞으로는 방공제 4800만원이 적용돼 대출 가능액이 3억200만원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디딤돌 대출은 연 소득 6000만원 이하(신혼가구 85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이 5억원(신혼 6억원) 이하의 집을 구입할 때 최대 2억5000만원(신혼 4억원)까지 저리(연 2.65~3.95%)로 빌려주는 정책 금융 상품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최대 70%, 생애 최초는 최대 80%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10월 주요 은행을 통해 디딤돌대출의 한도를 예고 없이 갑자기 줄이는 조치를 시행하려다 실수요자 반발에 부딪히자 이를 유예했다.
한 달 만에 대출 한도 축소 대상을 수도권 아파트로 한정하고, 다시 한 달간 유예기간을 두는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대출 규제 영향으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조정 국면에 들어간 분위기다. 하지만 실수요자의 원성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갑작스러운 강력한 주택담보대출, 전세 대출 규제 여파로 신축 아파트 계약 자체를 포기하거나, 돈줄이 막혀 급하게 분양권을 파는 사례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주택산업연구원이 조사한 10월 전국 입주율은 67.4%로 9월보다 2%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서울은 6.5%포인트 떨어진 81.2%로 나타났다.
디딤돌은 서민 대출이다.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에서 자유로운 강남 등 아파트 선호 지역을 중심으로는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더욱 견고해면서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 지고 있다.
높아진 대출 문턱에 ‘대출 난민’도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이 한때 전세계에 열풍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떠오른다.
빚에 쫓기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서바이벌 게임에 뛰어든다. 하지만 극 중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탈락하는 이들에겐 치명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 시즌2를 예고하고 있는 ‘오징어 게임’과 같은 대출 전쟁이 현실로 돌아온 것만 같다. 실수요자의 절규는 높아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