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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2차전’ 상법 개정 이슈, 시장·국회 내 온도 차 ‘뚜렷’


입력 2024.11.23 07:00 수정 2024.11.23 07:00        노성인 기자 (nosaint@dailian.co.kr)

올빼미 공시 꼼수 등 주주가치 훼손 사례 잇달아

투자자 “주주가치 보장” vs 기업 “부작용 우려”

정치권도 의견 대립 속 관련 입법 논의에 ‘촉각’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밸류업(기업 가치제고) 프로그램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폐지 절차를 밟는 가운데 이제는 상법 개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의 의사결정이 주주가치를 훼손시키고 있다며 개정을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어서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해당사자들 간 온도 차가 뚜렷한 상황이다. 소액주주들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재계에서는 기업들에 대한 잦은 소송 및 국외 자본의 공격 등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개정 여부와 범위를 논의해야 하는 국회에서도 여야간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올빼미 공시 꼼수·자사주 무상 출연에 투자자 불만↑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소액주주들을 중심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달에만 이수페타시스의 5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올빼미 공시와 HL홀딩스의 자사주 증여 등 정부의 밸류업 흐름을 역행하는 사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어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2일 이수페타시스는 전 거래일 대비 300원(1.32%) 상승한 2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 한 달(10.23~11.22) 만에 2만2700원(49.7%)이 하락한 수준이다.


이수페타시스 주가 급락의 원인은 대규모 유상증자를 알린 올빼미 공시(장 마감 이후 악재를 공시)였다. 지난 8일 이수페타시스는 2차전지 소재 기업 제이오를 인수하기 위해 500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문제는 유상증자를 통해 새로 발행하는 주식 수는 기존 발행 주식의 31.8%에 달라는 등 주식 가치 희석 효과가 큰 가운데 반도체기업인 이수페타시스보다는 계열사인 이수스페셜티메디컬을 위한 것이라는 논란이 제기되면서 투자자 불만이 커졌다.


HL홀딩스 역시 주가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 HL홀딩스는 이달 11일 이후 지난 22일까지 10거래일 중 6거래일은 하락, 2거래일은 보합을 기록했다. 해당 기간 주가는 2.8%(3만5100원→3만4150원) 하락했다.


지난 11일 HL홀딩스는 이사회를 열고 사회적 책무 실행을 위해 자사주 47만193주를 추후 설립할 비영리재단에 무상 출연하는 안건을 승인했다고 공시했다. 이는 이사회 결의일 전 거래일(11월8일) 종가 기준 163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회삿돈으로 사들인 자기 주식을 무상으로 재단에 증여하는 셈인데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비영리재단에 넘기면 의결권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최대주주인 정몽원 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노린 꼼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연합뉴스
상법 개정 여부 두고 찬반 의견은 팽팽


이렇게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기업들의 의사결정 사례가 연이어 나오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이사는 “제대로 된 밸류업을 위해서는 이사회가 고도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며 “현재 기업들이 주주에게 이익을 나누지 않고 쌓아두기 때문에 주가가 계속 하락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사회가 전문성을 갖춰야 하고 상법 개정을 통해 주주 보호 입법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재계는 상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향후 기업의 신성장동력 발굴에 어려움을 주고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증시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은 지난 21일 상법 저지를 위한 공동 성명서를 내고 “물적 분할이나 합병 등 소수 주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핀셋 접근이 필요하다”며 “상법 개정으로 교각살우(쇠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인다)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정치권에서 이견이 있어 실제 상법 개정 합의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회에서도 상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야의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만이 아니라 ‘주주와 회사’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대안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상법상의 주주 충실 의무는 사모펀드 등 공격적 헤지펀드에 의한 기업 경영권 침해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며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투세에 이어 상법 개정이 증시 내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며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투자자들이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만큼 상장기업에 국한된 자본시장법 개정을 선결한 다음 상법 개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노성인 기자 (nosaint@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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