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확대 이끌 세제 개편안 탄핵 정국으로 제동 우려
법인세 세액공제·배당소득 분리과세 등도 표류 위기
성장세 둔화 속 정책 기대감↓…“장기투자 유인 제거”
정국 혼란으로 정부와 여당이 증시 체질 개선을 위해 추진해온 정책들이 ‘시계 제로’ 상태에 놓이는 모습이다. 밸류업 정책을 위한 세제 인센티브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지원 확대가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가운데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한 세제 개편 구상이 무산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가 심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야가 합의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은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됐지만 국내 증시 밸류업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법인세법 등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밸류업 공시 기업 중 배당·자사주 소각을 많이 한 기업들에 대해 5%의 법인세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밸류업 기업에 투자한 개인주주들도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받도록 추진해왔으나 모두 제동이 걸렸다. 감세 혜택이 자산가들에게 몰릴 것이라는 반대에 부딪친 데다 상법 개정 등 주요 법안 논의에 밀려 표류할 위기에 놓인 것이다.
밸류업에 소극적인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선 세제 지원이 핵심으로 꼽힌다. 올해 밸류업 프로그램이 발표되기 전 업계가 가장 집중했던 부분도 법인세 감면 등 세제 혜택이었다. 이후 여소야대의 22대 국회에서 법안 통과 기대감이 점차 낮아지면서 기업들의 참여를 유인할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확대를 유도할 뚜렷한 방안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미 하반기 들어 트럼프 2기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높아진 가운데 초유의 계엄 사태가 겹치며 개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강해진 상태다. 지난 8월부터 11월까지만 해도 4개월 연속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에 나섰던 개인들은 이달 들어(12.2~12) 순매도로 전환해 1조7937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밸류업의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한 ISA 세제지원 확대도 반영되지 못했다. ISA는 한 계좌로 주식·펀드·채권 등 여러 금융 상품에 투자하면서 절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정부는 비과세 한도를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리고 총 납입 한도를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높이려고 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내년에도 현행 한도가 유지된다.
앞서 정부는 국내 시장으로 자금 이동을 유도하기 위해 ISA의 세제 혜택 강화를 추진해왔다. 정부는 ISA 세제 혜택을 늘리면 주식시장에 들어오는 장기 투자금과 밸류업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국회를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ISA의 가입자수는 지난 8월 말 9만4666명, 9월 말 7만4398명, 10월 말 6만8417명으로 석 달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ISA 월별 가입자 수가 7만명대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 4월(6만9292명) 이후 6개월 만이다. 앞서 기대를 모았던 세제 개편안이 국회에 계류되며 인기가 줄어든 상황에서 성장성이 더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법 개정과 무관하게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일관된 정책 방향을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에 밸류업 대표 업종으로 꼽히는 주요 금융지주와 은행으로 구성된 KRX은행 지수도 계엄 사태 이후(12월4~12일) 8.79%(969.26→884.02) 하락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정책 관련 법안들이 실질적인 혜택과 적용 대상은 제한적이란 점에서 파격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국회 본회의 결과는 기관과 외국인, 개인 투자자 모두에게 국내 주식시장 장기 투자의 유인을 제거한 셈”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