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플리' '신 민중가요 플리' 공유
“이 노래를 아십니까?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가사를 읊었다. 잠시 목이 메인 듯 말을 멈추며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시 만난 세계’는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촉발한 집회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곡이다. 정청래는 이를 “12월 3일 그 공포에 서울의 밤을 규탄하는 2~30대 청년들의 모습이다. 어른들의 잘못, 어른들의 살 떨리는 노여움까지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희망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앞서 2016년 이화여대 학내 시위 현장, 2020년 태국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도 울려 퍼져 주목받은 바 있다. ‘다시 만난 세계’의 노랫말 중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등이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다는 이유에서다.
‘다시 만난 세계’ 이외에도 다양한 케이팝이 국회 앞마당을 비롯해 대한민국 곳곳에서 2024년 버전 ‘집회 플리’(플레이리스트)로 떠오르고 있다.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신(新) 민중가요’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엔 샤이니 ‘링딩동’, 슈퍼주니어 ‘쏘리쏘리’, 지드래곤 ‘삐딱하게’, 에스파 ‘위플래시’, 데이식스 ‘해피’, 방탄소년단 ‘불타오르네’ 등 20곡 안팎의 곡들이 공유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모두가 따라부르기 쉽게 떼창 파트가 많거나,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노랫말이 담겨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케이팝이 흘러 나오고,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이 등장하면서 축제 같은 집회 분위기가 조성되자 정치 참여에 대한 거리감이 줄어들어 더 많은 이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기성세대와의 문화차이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온라인상에는 새롭게 등장한 일명 ‘집회 플리’ 혹은 ‘신 민중가요’ 를 미리 숙지하려는 기성세대의 움직임도 적잖이 포착된다. 더 이상 케이팝이 1020세대만의 문화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번 집회에서 케이팝은 세대 간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케이팝 가사를 함께 따라 부르며 세대를 넘어 하나 되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기성 세대를 품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긍정적인 변화를 시사한다. 외신들도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며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 해소와 정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무조건 기성세대에게 케이팝만을 강요하는 것만도 아니다. 플레이리스트에는 신해철 ‘그대에게’, 김수철 ‘젊은 그대’, 김연자 ‘아모르파티’ 등 중장년 세대를 배려한 선곡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집회 현장에서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흐려진 경계를 두고 진정한 ‘연대’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또 한 편에서는 집회 현장의 세대교체의 과정 속에 있다는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