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위협'으로 韓대행 발 묶어놓은 야권, 기업규제 법안 입법 서둘러
기업 기밀‧핵심기술 유출 위험 국회증언법, 재계 반대에도 입법 강행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등 기업 옥죄기 법안 줄줄이 추진 우려
정치적 부담 감수하더라도 악법에는 거부권 행사해야
‘12·3 비상계엄 사태’라는 기상천외한 사고를 친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직무를 정지당한 채 관저에 들어 앉아 월급만 받아먹고 있다.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데 192명의 야당 의원들 뿐 아니라 12명의 여당 의원들까지 동의했다. 여당의 ‘탄핵 반대 당론’이 아니었다면 전체 숫자는 204를 훨씬 넘었을 수도 있다.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상황이 인과응보라는 데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 국민들이 느꼈을 심정적 분노는 둘째 치더라도, 전 국민이 두고두고 갚아 나가야 할 막대한 사회‧경제적 채무를 떠넘긴 것은 용서받기 힘들다.
그가 대통령으로서 행사했던 여러 권한을 박탈당한 것 역시 사필귀정이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다면 그로 인해 재의요구권 일명 ‘거부권’의 행사 주체가 논란거리가 됐다는 점이다.
세상을 흑백의 논리로만 보는 극단주의자들은 한쪽을 ‘악(惡)’으로 규정하면 그 대척점에 있는 자,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주장, 행위는 모두 ‘선(善)’으로 판단한다. 심지어 흑백론자가 아닌 평범한 이들도 분노가 커지면 종종 그런 경향을 따른다.
현직 대통령이 ‘악’의 오명을 썼으니 여당도 모두 악이고, 그들의 대척점에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좌파 정당, 그리고 그들의 사상과 주장, 행위가 모두 ‘선’이라고 단정 짓는 이들이 평범한 시기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계엄 사태 이전까지 여야는 어느 한쪽을 선, 혹은 악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사안을 두고 힘겨루기를 해왔었다. 기업을 ‘타도해야 할 자본가 집단’으로 매도하는 낡은 이념을 가진 지지층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기업 옥죄기’ 법안들을 줄줄이 내놓은 더불어민주당과, 기업을 ‘국가경제를 이끄는 핵심’임을 인지하고 ‘규제 개혁’과 ‘악법 도입 방어’에 나선 국민의힘의 대결이었다.
물론, 국민의힘은 계엄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던 대통령의 실책과 자신들의 무능함으로 인해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1 남짓한 초라한 의석만 가지고 있었기에, 170석을 가진 민주당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런 힘의 불균형을 보완해줬던 게 대통령의 거부권이었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를 놓고 공격하기 좋은 지금의 상황은 민주당에게 ‘기업 옥죄기’ 법안을 입법화할 절호의 순간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게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국회증언법)’이다. 속된 말로 국회에서 부르면 무슨 사정이 있든 군말 없이 튀어 오고, 각 잡고 앉아 국회의원이 물어보면 설령 장사 밑천이 털리더라도 다 까놓으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국회의 출석 요구에도 뺀질대며 버티거나, 해외로 도망가거나, 출석해서도 요리저리 답변을 피해가는 증인이나 참고인들의 태도가 괘씸했으리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법은 기분 내키는 대로 만드는 게 아니다. 설령 의도가 정의에 부합한다 해도 부작용이 있거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 상황이 된다면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막대한 세비를 받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법을 만드는 자들의 도리다.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은 지난 17일 공동성명을 내고 “국회증언법은 기업의 경영활동과 국가 경쟁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재검토를 호소했다. 이 법안이 입법화되면 기업의 영업비밀과 핵심기술까지도 국회가 요구하면 의무적으로 자료를 제출하도록 강제화 되면서 해외 경쟁사로의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제조업 패권국’으로의 도약을 노리는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기술 탈취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 중국에게 최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갖춘 한국 기업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탈탈 털리는’ 상황은 매우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중국에 유난히 관대하거나 영업비밀과 핵심기술 유출이 국내 기업들에게 얼마나 큰 타격이 될지 전혀 개념이 없는 국회의원이 국회증언법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면, 중국의 ‘기술 굴기’는 한층 속도를 낼 것이고 우리 경제와 산업 경쟁력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삼성의 반도체 기술도, LG의 배터리 기술도 해당 분야에 무지하거나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사상적 충동으로만 가득 찬 국회의원 한 사람에 의해 손쉽게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게 국회증언법이다.
물론, 자신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이고, 그 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하나라는 자각이 있다면, 설령 사상적 동질성으로 인해 특정 국가에 대한 애정이 넘쳐난다 한들 그 나라와 기업들을 위해 국내 기업에 치명적인 비밀을 까발려 대외적으로 공개되도록 하는 저열한 짓을 하진 않으리라는 믿음을 많은 국민들이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0명의 국회의원 중 ‘대국(大國)인 중국에 기술 좀 넘어가면 어떠냐’는 식의 소아병적 생각을 가진 자가 단 한 명도 없으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기에 국회증언법은 위험하다.
국회증언법은 계엄 사태를 6일 앞둔 지난달 28일 민주당 등의 단독 처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계엄에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아니었다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희망이라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에 ‘소극적 권한 행사’를 강요하면서,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하겠다고 협박했다. 정국 혼란을 틈타 우리 기업들의 핵심 기술을 합법적으로 중국으로 유출시킬 기반을 기어코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던 것일까.
기업을 옥죄고 경제를 망치는 악법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민주당은 해외 금융자본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기업들을 무장해제시킬 상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현장에서 신나게 깃발을 흔들어대던 민주노총은 그 대가로 민주당에 ‘파업 자유이용권’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재추진을 종용할 게 뻔히 예상된다.
‘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야당으로부터 탄핵 협박을 받는 한덕수 총리에게 거부권 행사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탄핵이 의결된 지난 1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통령 권한대행을 ‘공직생활의 마지막 소임이자 가장 중대한 임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탄핵사태를 파고 든 경제악법을 저지하는 것이다. 혼란을 안정시키는 데 있어 때로 ‘침묵’ 보다 ‘결단’이 효과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