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위, 계엄 알았냐며 금감원장 난타
당일 조퇴 논란 "개인 사유…집안일"
'친윤' 타이틀, 막판 임기 최대 리스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임기를 반년가량 남겨 두고 탄핵 정국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윤 대통령의 경제계 복심으로 꼽혀 오던 이 원장도 대통령과의 선 긋기에 나섰으나, 정치권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 원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금융 정책이 추진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원장은 전날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계엄 사태와 관련해 십자포화를 맞았다. 비상계엄을 사전에 알았는지, 경제를 수습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대규모 인사를 내는 것이 맞는지 등에 대한 질의가 빗발쳤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원들에 따르면 계엄 당일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칩거했다는데, 비상계엄을 미리 알았던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 원장은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퇴한 것"이라며 "지난 3일 밤 11시 전후로 알았다"고 말했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도 이 원장의 조퇴 사유에 대해 재차 캐물었다. 결국 이 원장은 "너무도 개인적라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전날 저희 집이 이사를 했고 제 처가 많이 아팠다"고 답했다. '그날 취소한 일정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는 "새로 취임한 은행 담당 부원장과 뵙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지 않냐. 계엄 당일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다. 이 원장은 "매우 놀랐다"며 "빠른 시일 내 금융위원장을 모시고 빨리 시정조치를, 뭔가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박 의원이 '대통령이 경제를 아예 송두리째 망가뜨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냐'고 묻자 이 원장은 "그 시점에는 어떤 판단을 하기보다는 당장 놀랐고, 외환시장이 열려있어 잘 대응할지에 집중했다"면서도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죄 폭동'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동의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앞서 이 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탄핵이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 낫다"고 말하며 탄핵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날 이 원장은 계엄 선포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거듭 밝혔지만, 의원들은 증거를 요구했다. 김현정 민주당 의원은 "금감원장님은 친윤 검사 출신이라고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며 "우리 소관기관에 있는 분들에 대해 지난 2일부터 9일까지 저희가 근태와 관련한 자료 요구를 했는데 금감원장님만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계엄 사태로 어수선한 상황과 임기종료가 임박한 이 원장이 지난 12일 대규모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점도 비판했다. 금감원은 실·국장급 75명 중 74명을 재배치했다.
이 원장은 "내년 6월 이후 경우에 따라서는 9∼10월이 돼야 금융당국의 리더십이 마련될 텐데 그때까지 시장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납득이 안된다며 인사 사유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자 "꼭 보고드려야 할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거부했다.
비상계엄 전만 해도 이 원장의 임기 완주 전망은 지배적이었지만, 갑작스런 탄핵 정국으로 리더십에 타격을 받는 모양새다.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타이틀이 거취에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검찰 출신인 이 원장은 윤 대통령의 핵심 인사로 분류돼 왔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금융권 경험이 전무한 이 원장을 금감원장에 파격 발탁했다.
현재 이 원장은 탄핵 정국 속에서도 국내 금융시장 안정 메시지를 내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전날에도 이토 히데키 일본 금융청 장관과 일본 금융사를 만나 "국내 금융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며 "자본시장 선진화를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융 현안 추진은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감원은 전 금융지주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으로 촉발된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정기검사 결과 발표를 내년으로 연기하기로 했다. 가계대출 관리 기조도 변화가 감지된다. 당국은 가계부채 규제는 변함없다고 하지만, 시중은행은 가계대출 규제 완화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