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래소에서만 '비트코인' 들어간 가상자산 4종
비트코인에서 분리됐지만 대부분 개발 멈춰
'이름만 비트코인' 종목들 다수는 국내 거래량이 대부분..."주의 필요"
30대 직장인 A씨는 비트코인이 1억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에 이번 달부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에 가입해 트레이딩을 시작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종잣돈은 비트코인 1개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A씨는 한 인터넷 뉴스에서 본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비트코인골드(BTG)를 개당 약 5만원에 매수했다. 그런데 A씨가 매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비트는 내년 1월 23일 비트코인골드를 상장 폐지한다고 공지했다. A씨는 약 3주 만에 50%가량 손실을 보고 업비트 애플리케이션(앱)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29일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을 검색하면 4가지 종목을 매수할 수 있다. 비트코인(BTC), 비트코인캐시(BCH), 비트코인골드(BTG), 비트코인에스브이(BSV)다. 그런데 티커가 BTC인 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세 종목은 '진짜' 비트코인이 아닌 알트코인이다. 이들 가상자산들은 1만원~100만원 미만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종목명에 '비트코인'이 붙은 가상자산들은 비트코인을 하드포크(분리)한 가상자산이다. 세 가지 알트코인 중 첫 번째로 하드포크된 비트코인캐시는 2017년 8월 1일 탄생했다. 비트코인캐시는 당시 세계 채굴 산업을 주도하던 중국계 채굴기업 비트메인(Bitmain)의 최고경영자(CEO)인 우지한이 만들었다. 비트코인캐시는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적 특성을 이어받으면서, 당초 비트코인의 목표였던 '결제 수단'에 집중하겠다는 프로젝트다. 다만 중국이 채굴을 국가적으로 금지하면서 비트코인캐시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됐고, 현재는 시가총액 21위권으로 밀려난 상태다.
비트코인에서 하드포크된 비트코인골드도 있다. 최근 업비트의 상장 폐지 발표로 가격 급락이 나타나기도 했다. 비트코인골드는 2017년 11월부터 테스트를 시작해 토큰을 출시했다. 비트코인골드는 이른바 '채굴의 민주화'라는 슬로건을 걸고 그래픽카드를 가지고 있는 이용자라면 누구나 채굴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골드는 프로젝트 초기부터 채굴 수수료, '51% 공격' 등으로 논란을 샀다. 프로젝트 지속 가능성 자체에도 논란이 계속됐다. 업비트는 지난 24일 상장폐지 공지에서 "가상자산 관련 중요사항에 대한 공시 여부 및 정도, 가상자산 운영의 투명성, 사업의 실재성과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미진한 부분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국내 4위권 거래소인 코인원은 업비트의 상장 폐지 공지 이후 "(다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골드를 코인원에 입금하면 최대 111만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지급하겠다"는 이벤트를 열어 논란을 샀다.
비트코인에서 분리된 비트코인캐시를 또 하드포크한 비트코인에스브이라는 가상자산도 있다. 비트코인에스브이는 2018년 11월 토큰을 출시했다. 개발 의도는 비트코인의 확장성 개선과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념 계승이다. 일종의 '교리' 해석 차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비트코인에스브이 역시 업계 내 개발 활동이나 프로젝트 진척상황 등은 상세히 공유되고 있지 않다. 이외 비트코인캐시에서 분리된 또 다른 계파인 비트코인ABC(현재 티커 XEC)도 마찬가지다.
종목 명칭에 비트코인을 담은 이들 알트코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비트코인에서 첫 하드포크한 비트코인캐시를 제외하면 모두 대부분 거래량이 국내 거래소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가상자산 데이터 플랫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업비트 상장 폐지가 예정된 비트코인골드는 27일 기준 거래량의 84.12%는 업비트에서·14.84%는 빗썸에서 발생하고 있다. 비트코인에스브이 역시 업비트 거래량이 글로벌 신뢰도 5위 내 거래소 중에선 1위다. 비트코인ABC(현 XEC)도 업비트 거래량이 글로벌 1위다. 최근 24시간 동안 약 44억원 상당의 거래량이 업비트에서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비트코인과 연관이 없는 이들 가상자산들이 국내 거래소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남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정상적 가상자산 보유 사태를 초기에 지적한 인플루언서 변창호는 "비트코인캐시의 경우 비트코인의 첫 하드포크로, 분리 명분이 있어 살아남았지만 이후 분리된 가상자산들은 '한탕'을 하려고 뒤늦게 따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개발이 멈춘, 이름만 비트코인인 가상자산들을 초보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인 줄 알고 매수하는 경우가 잦다"며 "이번 비트코인골드의 경우 업비트가 나서 상장 폐지해 추가적인 투자자 피해는 줄게 돼 다행이지만, 이름에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들어간다고 해서 모두 관계성이 있는 가상자산은 아니라는 점을 투자자들이 명확히 알아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