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계엄 선포엔 "명백한 잘못" 의견
국민의힘 향해선 "단일대오 못하다니 실망"
'이재명·민주당' 향해선 '분노민심' 들끓어
'정치적 혐오' 토로하며 "투표 포기" 선언도
설 연휴를 맞은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의 정치권을 향한 민심은 자주 오지 않는 눈이 연휴 기간에 갑자기 내린 것처럼 싸늘했다. TK 주민들은 비상계엄령 선포와 탄핵소추안 통과 등 윤석열 대통령의 상황과 이재명 대표가 앞장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간의 지속된 정치 공방에 지친 듯, 정치 관련 얘기를 꺼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 관련 이야기를 꺼낸 TK 주민들의 목소리에는 하나 같이 화가 난 듯 날이 서 있었다. 정치 불안정으로 인해 촉발된 민생경제 파탄에 대한 불만은 물론이고, 지속된 정쟁으로 커진 정치 혐오를 날선 불만으로 쏟아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TK 주민들이 가장 큰 불만을 쏟아낸 대상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였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를 이 대표와 민주당의 정치적 훼방에서 찾는 이들도 다수였다.
지난해 12월 개통한 대경선을 타고 서문시장에 장을 보러왔다고 밝힌 경북 칠곡군에 거주하는 이모(60대·여)씨는 "윤석열(대통령)이는 이미 김건희(여사) 때문에 싫어한지 오래됐고, 국민의힘도 미워 죽겠다"면서도 "이재명도 영 아니다. 여기 다 다녀봐야 이재명 좋다는 사람 하나 찾기 어려울 거다. (이재명은) 죽어도 대통령은 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대구 달서구 출신 김모(30대·남)씨는 "계엄은 정말 잘못된 것이지만, 원인을 제공한 건 민주당과 이재명이 아니냐"라며 "정치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요새 뉴스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20번이 넘는 탄핵안이 나왔고, 민주당이 뭐든지 다 반대했단 걸 알게 됐다. 그걸 생각하면 민주당도 지금 국민들에게 표 달라고 하는 것도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동성로에서 만난 대구 중구에 거주하는 구모(30대·남)씨는 "이재명(대표)이 대통령이 되면 정치가 어지러워 지는 수준이 아니라 북한과 중국에 대한 걱정에 이 나라에 살기가 어려워질수도 있을 것 같아 두렵다"며 "이 대표나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 가까워지면 심각하게 이민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 씨는 '보수정당에서는 누가 대권 후보로 적합하냐'는 질문에는 "지금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이 없는게 더 문제"라며 "그나마 한동훈 전 대표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았는데 정치적 미래가 밝아보이진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 2022년 3월 열린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75.14%라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지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아울러 계엄 선포와 탄핵소추안 통과로 인해 어려워진 정국 속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하는 국민의힘을 향한 질타의 목소리도 나왔다.
경북 칠곡에 사는 박모(60대·남)씨는 "윤 대통령이 뭘 하고 싶어했는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계엄령은 잘못된 방법이었던 것 같다"며 "처음 일(계엄령) 터졌을 땐 진짜 이재명(대표)이 대통령이 되는 줄 알고 걱정했다"고 토로했다.
또 박 씨는 "계엄이나 탄핵보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졌는데도 똘똘 뭉치지 못하는 국민의힘에 있다. 민주당은 하나로 뭉쳐서 잘 싸우는데 여당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경북에서도 지금 대안이 없어서 국민의힘을 응원하는 것이지, 좋아서 지지해주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고 꼬집었다.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김모(60대·남)씨는 "윤 대통령이 사실상 보수를 거의 다 망쳐놨는데, 당(국민의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내부싸움만 하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다"면서도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삶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재명이 되면 더 할 것이다. 정치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지만 이재명이 될 것 같아서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 투표하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 씨는 "정권이 연장된다면 정치 경험이 풍부하고 여러 세대를 다 아우를 수 있는 오세훈 시장이 적합해 보인다"며 "대구 출신이 아니어도 적극적으로 밀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수의 심장'답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을 두둔하는 의견도 있었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달 20~21일 이틀간 조사한 결과, TK의 윤 대통령 지지율은 54.6%로 직전(지난달 6~7일) 조사(52.0%) 대비 2.6%p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0.4%p 오른 58.5%로 집계되며 모든 지역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대구 남구에 거주하면서 서울에서 열리는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는 최모(50대·남)씨는 "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인데 법을 우리보다 모르겠느냐. 그걸(헌법·계엄법 등) 알고도 한걸 보면 분명히 뭔가 있긴 있는 것 같다"며 "탄핵도 전부 잘못됐다. 내란죄를 뺐다는 얘기를 듣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내돈 들여서 서울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어 최 씨는 "서울까지 가서 느낀 건 윤 대통령이 불쌍하다거나 잘못됐다는 것보다 이재명과 민주당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다"며 "다른 건 몰라도 이재명은 절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구 수성구에서 온 유모(50대·여)씨는 "이번 기회로 부정선거는 한 번 손보는 게 좋을 것"이라며 "최근엔 김문수(장관)랑 전한길(강사)이 좋더라, 둘다 말을 시원하게 해서 눈길이 간다. 특히 김문수(장관)는 내가 사는데 출마도 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씨는 "이재명(대표)은 죽어도 안 된다. 김부겸(전 총리)이는 나이가 많다"며 "민주당에 넘어가면 나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정권교체는)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속된 정치적 불안에 향후 선거를 포기하겠단 입장도 적지 않았다. 동성로에서 만난 대구에 위치한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고만 밝힌 20대 여성은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에 계엄 사태를 겪으면서 윤 대통령 얼굴이 자꾸 알고리즘에 뜨는데 혐오스러울 정도로 보기 싫다"며 "이재명도 마찬가지로 싫다. 이런 일이 계속될 수록 정치 혐오만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문시장에서 과일을 판매하는 최모(60대·여)씨는 "여기서만 20년 가까이 장사하고 있는데, 한 번도 경기가 좋았던 적이 없다. 경기는 매번 나빴다"며 "정치가 경기를 좋게 해준다든지, 장사를 잘 되게 해준다고는 절대 믿지 않는다. 솔직히 그 놈이 그 놈이다. 앞으로 절대 선거하러는 안 간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