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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민영 기업가를 긴급 소집한 속사정


입력 2025.02.23 06:06 수정 2025.02.23 06:06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習, 전기차·AI·반도체 등 첨단기술 선도 민영 기업가 불러모아

당면한 민영경제 어려움, 단기적·부분적인 만큼 극복가능 강조

민간 기업 앞세워 경제 난국 타개하려는 習의 강력한 의지 반영

美에 큰 충격 준 딥시크 량원펑, ‘미운털’ 마윈 등장해 눈길 끌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민영기업 심포지엄에 참석한 기업인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인공지능(AI)과 전기자동차,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민영 기업가들을 긴급 소집했다. 민간 기업을 앞세워 한층 심화하는 경제 난국을 타개하려는 시진핑 주석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수 부진과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미·중 기술패권 경쟁과 관세전쟁까지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민영 기업 심포지엄(좌담회)을 열고 당면한 민간경제의 어려움을 인정한 뒤 이 어려움은 부분적이고 단기적인 만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관영 신화통신, 중국중앙TV(CCTV) 등이 18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먼저 부자가 되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과 자신의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을 함께 설파했다. 그는 “민영 기업과 민영 기업가가 먼저 부를 일궈 공동부유를 촉진하라(先富促共富)”며 “중국식 현대화를 추진하기 위해 새롭고 더 큰 기여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민영 기업이 중국 경제발전의 중요한 구성요소”라며 “혁신과 고용창출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이번 심포지엄 개최는 중국 지도부가 민간 부문 중심의 경제 노선을 중시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중국 경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반도체·AI 등 첨단산업을 둘러싼 미·중 패권경쟁은 앞으로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기술 자립이 필수적인 만큼 빅테크(기술 대기업)가 그 선봉에 서라고 주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민영기업 심포지엄에서 마윈 알리바바그룹 창업자(왼쪽 두번째)를 비롯해 중국을 대표하는 테크기업 수장들이 시진핑 국가주석이 입장하자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있다. ⓒ 중국중앙TV(CCTV) 캡처

루저(蘆哲) 중국 둥우(東吳)증권 수석 이노코미스트는 "이번 민영기업 좌담회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중국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다음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열린 것"이라며 "이는 민영 경제 발전을 지지하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적극적인 신호"라고 설명했다. 로버트 레아 미 블룸버그 산업연구 애널리스트도 "중국 지도부가 앞으로 과학기술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을 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이 민간 심포지엄에 참석한 것은 2018년 11월1일 이후 6년 3개월여 만이다. 중국은 그해부터 ‘국진민퇴’(國進民退·국유기업은 앞으로 나아가고 민영기업이 뒤로 물러난다)를 기조로 삼았다. 이어 2020년 마윈(馬雲) 알리바바그룹 창업자의 금융당국 비판 발언을 빌미 삼아 그룹 산하 핀테크 업체 마이(螞蟻·Ant)그룹의 미국 뉴욕 상장을 돌연 중단시켰다. 이듬해 8월엔 시 주석이 공동부유 정책을 본격화하며 중국 빅테크 등 민영 기업에 대한 정부 규제를 전방위적으로 강화했다.


이날 참석자들의 면면은 국진민퇴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화려했다.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華爲)런정페이(任正非) 회장,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텅쉰(騰訊·Tencent) 마화텅(馬化騰) 이사회 의장, 마윈 전 알리바바 창업자,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 닝더스다이(寧德時代·CATL) 쩡위췬(曾毓群) 회장, 전기차 업체 비야디(比亞迪·BYD) 왕촨푸(王傳福) 회장, 스마트폰·전기차 업체 샤오미(小米) 레이쥔(雷軍) 회장, 춤추는 로봇을 선보인 위수커지(宇樹科技·Unitree)왕싱싱(王興興) 창업자 등을 좌담회장 제1열에 배치해 테크기업의 위상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신흥 과학기술 분야 창업자들도 대거 참석했다. 이미지센서 반도체 업체 웨이얼(韋爾)위런룽(虞仁榮) 창업자, 배달 플랫폼 메이퇀(美團) 왕싱(王興) 창업자, 음성 AI기업 커다신페이(科大訊飛) 류칭펑(劉慶峰) 창업자, 사이버 보안전문기업 치안신(奇安信)의 치샹둥(齊向東) 이사장 등이 모습을 보였다.


지난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민영기업 심포지엄에서 런정페이(왼쪽) 화웨이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 중국중앙TV(CCTV) 캡처

이중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생성형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량원펑(梁文鋒) 창업자와 마윈 전 알리바바그룹 창업자였다. 량 창업자는 지난달 AI모델 딥시크 R1을 출시한 뒤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딥시크 돌풍을 타고 시 주석의 남다른 관심을 받는 기업인 대열에 단숨에 합류했다.


마 창업자는 2020년 10월24일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 이강(易綱) 인민은행장 등 당시 국가급 지도자와 금융 최고위 당국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와이탄(外灘) 금융서밋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위험 방지를 지상 과제로 내세워 지나치게 보수적인 감독 정책을 펴고 있다”고 금융당국의 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 결과 마 창업자 개인에 대한 후폭풍도 컸다. 그는 즉시 공개 석상에서 사라졌고, 4년여 간 해외로 떠도는 등 정치적 탄압을 받았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 성장과 기술 자립을 위해 기업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며 "마 창업자 등을 부른 것은 탄압이 끝났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마 창업자가 심포지엄에 참석한 일 자체가 ‘빅테크를 지지한다’는 메시지가 된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판 네이버’로 불리는 바이두(百度)의 리옌훙(李彥宏) 회장은 불참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의 투자자는 최고 지도자가 참석하는 중요한 회의에 해당 기업 경영진의 참석 여부를 기업의 위상과 직결시켜 주목한다”고 지적했다. 초대를 받지 못한 기업의 경우 각종 억측을 불러일으키면서 시장이 꺼리게 된다는 얘기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이런 까닭인지 심포지엄 당일 바이두의 주가는 7% 가까이 폭락했다. 바이두 주가 폭락은 시 주석이 소집한 민영기업 좌담회에 리 회장이 초대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바이두 주가는 급락세로 돌아서며 장중 한때 8.8%까지 곤두박질쳤다. 다만 장 막판에 낙폭을 줄여 6.94% 하락으로 마감했다. 시가총액은 24억 달러(약 3조 4400억원)나 증발했다.


바이두는 앞서 16일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어니(文心一言) 플랫폼에 딥시크를 연결해 검색기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바이두가 어니 개발을 통해 수년간 주도해왔던 AI업계의 우월한 지위를 잃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바이두가 딥시크와 같은 후발주자를 따라가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싱가포르 연합조보(聯合早報)는 지적했다.


대형 부동산 업체 총수들도 2018년 시 주석의 첫번째 민영기업 심포지엄에는 대거 참석했지만, 올해는 아무도 초대받지 못했다. 부동산이 더는 민영경제 성장의 핵심이 아니며 신에너지와 첨단 제조업이 대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첨단기술 산업은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했으며, 내년에는 주택 부문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을 비롯해 왕촨푸 비야디 회장, 위원룽 웨이얼반도체 회장, 왕싱싱 위수커지 회장 등 6명이 업계를 대표해 발언했다. 런 회장은 “표면의 번영이 내공 부족을 가리고 있다”며 “미래 5년이 중국 과학기술 산업의 생사를 결정할 잠복기”라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오는 2028년까지 기술자립률 70%를 달성하기 위한 ‘스페어타이어 2.0’ 계획을 이미 가동했다고 처음 공개하며 시 주석에게 화답했다고 홍콩 성도일보(星島日報)는 전했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왕 비야디 회장은 전기차 분야에서 중국이 3~5년을 앞서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보이며 “민영 기업은 세계화 경쟁에 적극 참여해 국제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개방과 혁신만이 세계가 주목하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고 더불어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 테슬라의 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겨냥한 왕 위수커지 창업자는 “'저비용 고성능‘을 핵심 이념으로 휴머노이드 산업에서 독특한 중국식 경로를 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위 웨이얼반도체 회장은 “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방식의 인수·합병(M&A)으로 핵심 기술을 빠르게 확보해 반도체 시장에서 지위를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역설했다.


특히 심포지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이후이자 올해 경제성장 목표와 이를 뒷받침할 경제 정책이 발표되는 다음 달 초 양회를 앞두고 열렸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미·중 패권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민간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며 다시 기업 통제를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타오촨(陶川) 중국 민성(民生)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좌담회는) 민영기업이 미·중 기술경쟁의 최전선에서 다시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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